"누가 기후 악당이냐"…탈탄소 '연착륙' 막는 행동주의

입력 2024-05-12 17:45   수정 2024-05-13 00:37

유럽연합(EU) 집행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은 요즘 환경단체들의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환경단체의 목표는 다음달로 예정된 EU 총선거 결과를 좌파 우위로 만들려는 것이다. 브뤼셀에서 ‘금요 시위’를 확산시킨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지난달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원정 시위를 하다 6000크로네(약 75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으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전문가들은 올해가 글로벌 탈탄소 여정의 중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5년마다 치러지는 EU 총선거에다 11월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어서다. 미국 환경단체들도 오일·가스산업 부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2기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선거 결과는 한국 에너지산업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기후 행동주의’의 파도가 국내에도 조만간 덮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막무가내식 ‘탈탄소’ 주장
환경단체의 공세는 국내 에너지업계에서도 현안으로 부상 중이다. 동해에 2100㎿ 규모 발전설비 2기를 구축한 삼척블루파워만 해도 환경단체의 반발로 가동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증권사 여섯 곳에 삼척블루파워 회사채 인수를 중단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삼척블루파워는 4조9000억원의 사업비 중 1조원 규모를 회사채로 조달할 계획이었다. 올해 6월과 9월 만기인 회사채는 각각 1000억원, 1500억원어치인데 삼척블루파워의 현금성 자산은 1100억원에 불과하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자금 조달이 늦어지면서 송전선로 부족 등 인프라 구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탈탄소는 기술 발전 속도를 감안해 추진해야 하는데 환경단체들이 무조건 화석연료 사용을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한국 경제 전체에는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호주 바로사가스전 사업에 참여한 SK E&S는 글로벌 환경단체의 ‘작업’ 탓에 수소 생태계 구축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들은 원주민 보호 등의 명분을 내세워 한국무역보험공사 등의 금융 지원을 공략하고 있다. SK E&S는 바로사가스전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도입해 개질 시설에서 블루 수소를 생산하고, 이 과정에서 탄소 포집설비를 구축해 액화한 이산화탄소를 동티모르 폐가스전에 저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탄소포집 등 기술 발전과 보조 맞춰야”
SK E&S는 바로사가스전 인허가 무효 소송에서 최종 승리했지만 사업 지연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무역보험공사의 3000억원 보증 시효가 만료되면서 개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법원은 판결문에서 “원주민의 소송 제기 과정에 환경단체의 ‘교묘한 지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주요 7개국(G7)이 석탄발전 폐기에 합의하는 등 석탄 규제가 현실화하고 있어 LNG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다. 중국은 세계 석탄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쓰며 전력의 약 60%를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다. 한국도 석탄발전 비율이 39%에 이르며, 일본은 27%에 달한다. 한국은 LNG 가격이 급등한 2022년에 전년과 비슷한 양을 들여왔으나 총수입액은 255억달러에서 500억달러로 불어났고, 그해 477억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냈다.

환경단체들의 공세 방식이 진화하고 있는 것도 국내 기업들로선 부담 요인이다. 환경단체들은 최근 연기금·자산운용사를 통해 기업을 간접 압박하는 대신, 기업 지분을 사들여 소액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기후 행동주의’로 변신하고 있다는 얘기다. 석유기업 엑슨모빌과 행동주의 투자그룹 아르주나캐피털 간 대결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르주나캐피털은 올초 주주총회에서 엑슨모빌의 기후 목표에 스코프3(밸류체인 전체 온실가스 배출)를 포함하도록 하는 주주제안을 냈다.

이현일/성상훈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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