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개발과 맞물려 건설된 잠수교는 실제로 군사적인 목적도 있었다. 유사시 군 장비의 신속한 이동을 위해 한강 수면 2.7m 위로 낮게 지었고 교각을 15m 짧은 간격으로 둬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했다. 6년 뒤 개통한 반포대교 아래 숨길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처음엔 골재 채취선 등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크레인으로 중간 15m 구간을 들어올리는 ‘승개교(昇開橋)’였지만 1986년 구조변경 공사를 통해 지금의 아치 형태로 바뀌었다. 잠수교는 여름 장마철엔 서울 시민에게 ‘측우기’ 역할도 했다. 비가 좀 많이 내린다 싶으면 어김없이 잠수교가 통제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한강 수위가 6.5m를 넘으면 물에 잠기는 잠수교는 수위 5.5m 땐 보행자·자전거 통행이 금지되고, 6.2m를 넘으면 차량도 통제된다. 2020년 8월 장마 때는 232시간이라는 역대 최장 ‘잠수 기록’을 세웠다.
서울시가 잠수교를 ‘세상에서 가장 긴 미술관’으로 만든다고 한다. 2026년 잠수교를 ‘차 없는 보행 전용 다리’로 바꾸기 위한 설계 공모에서 네덜란드 건축 기업의 제안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잠수교와 반포대교 사이에 분홍색 공중 보행 다리를 건설해 강 쪽으로 돌출한 갤러리의 작품과 한강을 입체적으로 감상하게 한다는 콘셉트다. 일본의 나오시마가 섬 전체를 미술관으로 꾸몄다면 잠수교는 다리 전체가 미술관이 되는 것이다. 패션쇼 런웨이, 야외 영화관 등으로도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한강 위에 길이 795m, 너비 18m의 특별한 문화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자동차, 열차가 주인인 31개의 한강 교량 중 잠수교 하나 정도는 온전히 보행자의 것으로 돌려줘도 좋지 않을까 싶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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