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V와 BEV로 이동
수입 승용차 내에서 디젤 인기가 치솟았던 때는 2015년이다. 한국수입차협회(KAIDA)에 따르면 2015년 판매된 전체 24만3,900대의 수입 승용차 가운데 디젤은 16만7,925대로 무려 68.8%의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1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 상황은 돌변했다. 2015년을 정점으로 매년 내리막을 걷더니 지난해는 27만1,000대 중에서 2만2,354대로 8.2%의 비중에 머물렀다. 올해는 급기야 4월까지 누적 2,084대로 2.7%까지 추락했다. 그만큼 수입 승용 시장에서 디젤의 존재감은 사라진 셈이다. 심지어 디젤은 BEV에도 추월당했다. 올해 3월까지 판매된 디젤 2,084대는 1만3,864대가 등록된 BEV와 비교해도 턱없이 적은 비중이다.
그럼 수입 승용차 판매가 디젤이 축소된 만큼 감소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2014년 전체 19만6,359대에 달했던 수입 승용차 판매는 지난해 27만1,034대로 늘었다. 한 마디로 디젤 수요가 다른 연료 부문으로 이동했다는 의미다. 그럼 디젤은 어디로 옮겨갔을까? 비중만 놓고 보면 디젤은 무려 59.5%가 감소한 반면 가솔린은 15.9%, 하이브리드는 29.8% 증가했다. HEV 또한 주력 연료가 가솔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디젤의 가솔린 이동 현상이 대부분이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디젤 수요는 BEV로도 옮겨 갔다. 디젤이 10년 사이 59.5%가 줄어들 때 가솔린과 HEV 비중은 모두 합쳐 45.8% 증가했으니 나머지 13.7%의 행방을 찾아야 한다. 결과는 BEV 9.7%, PHEV 4.0%다.
그런데 올해 4월까지 연료별 비중은 또 다른 양상을 보인다. 지난해 가솔린 내연기관과 HEV의 비중은 합쳐서 77.9%에 달했다. 그러나 올해는 4월까지 76.2%로 비중이 소폭 감소했는데 흥미로운 점은 가솔린 내연기관의 감소폭이 가파르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44.1%에 달했던 가솔린 내연기관의 비중은 올해 1~4월 27.3%로 줄었다. 반면 33.8%였던 HEV 비중은 48.7%로 증가했다. 동시에 BEV도 사상 최대치인 18.2%로 확대됐다. 이런 흐름은 가솔린 내연기관의 수요가 HEV와 BEV로 분산 이동한다는 점을 나타낸다. 물론 대부분은 HEV로 옮겨 가지만 BEV로 이동한 사람도 은근히 많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소비자 인식이다. 100% 내연기관에서 일부 자체적으로 전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HEV로 수요가 이동하는 현상은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한 마디로 내연기관에서 또 다른 내연기관을 구입하는 것과 같아서다. 반면 내연기관에서 BEV로 에너지를 바꾸는 소비자는 생각 자체가 내연기관을 고를 때와 전혀 다르다. 이들은 친환경 성향이 높고 제품에 대한 지식 수준도 내연기관을 선택하는 사람보다 비교적 높다(2017 송미령). 따라서 최근 수입차 업체들의 BEV 마케팅은 단순한 브랜드 과시를 넘어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EU는 ICE(내연기관)와 또 다른 내연기관인 HEV의 연관성을 눈여겨보는 중이다. 내연기관에서 내연기관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탄소 중립을 위해 내연기관에서 BEV로 더 많은 소비자가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 마디로 HEV 또한 그냥 내연기관으로 여기려 한다는 것이고, 이를 명분 삼아 HEV에 대한 혜택을 축소하거나 아예 없애려는 추세다.
그러자 한국도 2025년부터 HEV를 저공해차에서 제외하고 세제 혜택을 폐지하기로 했다. 이 경우 HEV의 가격이 오르는 효과가 생겨 BEV로 더 많은 소비자가 옮겨갈 수 있다는 계산이다. 물론 그 사이 BEV 가격은 지금보다 떨어진다는 전제가 포함돼 있는데 실제 완성차기업들은 배터리의 에너지밀도 개선을 통해 셀 사용량을 줄이려 한다. 설령 줄이지 않는다면 주행거리를 늘려 충전의 불편함을 일부 해소하는 전략을 강하게 추진하는 중이다.
요즘 전기차 캐즘 논란이 한창이다. 선도적인 소비자그룹이 BEV를 구매한 후 대중적 소비가 따라오기까지 공백이 생긴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BEV를 캐즘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BEV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어서다. 오히려 지난 2~3년 급격한 성장을 일시적 과열로 보는 게 올바른 분석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지향하는 소비자가 점진적으로 늘고 있으니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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