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흡연자의 폐암 발병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담배를 피지 않은 고령의 여성 가운데서 발병이 많다. 비흡연 폐암 환자의 70% 정도는 ALK 단백질 등을 표적으로 하는 항암제를 처방한다. 나머지 30%는 부작용이 많고 효과도 떨어지는 세포독성 항암제를 사용하고 있어 표적 치료제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화학생명융합연구센터 이철주 책임연구원이 국립암센터 연구진과 함께 비흡연 폐암의 에스트로겐 신호 전달 체계 과발현 현상을 다중오믹스로 규명하고 항암제 ‘사라카티닙’을 표적 치료 후보 물질로 제시했다고 10일 발표했다.
다중오믹스는 유전체, 단백체 등 다양한 분자 정보를 통합해 총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기술이다. 단백체 다중오믹스의 경우 수십 마이크로그램 수준의 미량의 단백질을 최대한 손실 없이 분석하는 것이 관건이다.
연구팀은 지난 10여 년간 국립암센터에 내원한 비흡연 폐암 환자 1597명의 생체 검사 시료의 유전자를 분석해 치료 표적이 발견되지 않는 환자 101명의 암조직을 확보했다. 암 조직의 단백체 분석에서는 ‘동중원소 표지법’을 써서 1개 시료당 평균 9000여 종의 단백질과 5000여 종의 인산화 단백질의 양을 측정했다. 동중원소 표지법은 일종의 ‘화학적 바코드’를 생성하는 기술이다. 동위원소 여러 개를 서로 달리 조합해 무게를 같게 만든 뒤 각 단백질의 출처를 추적할 때 사용한다.
연구결과 암 발생과 관련된 유전자인 ‘STK11’과 ‘ERBB2’의 운전자 돌연변이(driver mutation)가 다수 관찰됐다. 운전자 돌연변이는 세포가 정상적인 증식 프로그램을 따르지 않고 분열해 클론을 만들고, 이 클론이 증폭돼 암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함께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신호전달 경로가 과발현되는 것을 확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하위 신호전달 단백질 저해제인 사라카티닙을 적용한 결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세포 사멸 효과가 있음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사라카티닙에 대한 동물 실험(전임상)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와함께 비흡연 폐암 환자 중 에스트로겐 신호전달 경로에 특이한 반응을 보이는 환자를 감별할 수 이는 분자진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철주 KIST 책임연구원은 “다중오믹스 분석으로 난치암의 새로운 치료 표적을 발굴한 성공적 사례”라며 “병원과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이룬 성과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은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캔서 리서치’에 실렸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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