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양대 경매사 중 하나인 크리스티의 홈페이지가 ‘대목’인 5월 뉴욕 경매를 앞두고 먹통이 됐다. 해커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태로 인해 초고가 미술품을 사들이는 세계적인 거부(巨富) 고객들의 개인정보가 대량으로 유출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13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가디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크리스티 홈페이지는 지난 10일부터 정상적인 접속이 불가능한 상태다. 크리스티 관계자는 “기술 보안 문제로 홈페이지에 문제가 생겼지만 적절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주요 경매 주간의 시작(현지시간 14일)을 하루 앞둔 지금까지도 홈페이지는 복구되지 못했다. 지금 크리스티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사무실 전화번호가 적힌 단촐한 임시 페이지만 뜬다.
이번 사태로 크리스티가 받는 유무형의 타격은 상당할 전망이다. 일단 연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5월 경매의 실적이 하락할 게 확실시된다. 홈페이지를 통해 이뤄지는 온라인 경매들이 ‘올스톱’ 됐기 때문이다. 크리스티 측은 “오프라인 미술품 판매는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했지만, 추후 온라인 경매가 어떤 식으로 재개될지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오프라인 경매에도 악재다. 경매사 홈페이지는 경매 출품작과 작가에 대한 정보, 경매 추정가 등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신뢰성 높은 창구기 때문이다. 다만 초고가 작품 경매에는 타격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수십억~수백억원 규모의 예술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작품을 직접 확인한 뒤 경매 현장에 대리인을 보내 작품에 입찰해서다. 지난 주말에도 수십명의 컬렉터가 뉴욕 맨해튼 록펠러 센터에 있는 크리스티 전시장을 직접 찾아 작품을 관람하고 입찰 여부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 큰 문제는 크리스티에 대한 시장과 고객의 신뢰도가 크게 저해됐다는 점이다. 주요 외신들은 크리스티가 해커에게 고객들의 개인 정보를 탈취당했다는 추측을 제기하고 있다. 크리스티 측이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놓고 해커들과 ‘몸값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설도 제기된다. NYT는 익명의 크리스티 관계자를 인용해 “회사가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졌다”며 “경영진이 직원들에게도 아직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크리스티의 주요 고객들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들인 만큼, 개인정보 유출이 사실로 밝혀지면 그 여파는 적지 않을 전망이다. 세계 미술 시장이 침체된 가운데 또 하나의 큰 악재가 더해졌다는 시각도 있다. 오는 5월 뉴욕에서 크리스티와 소더비, 필립스 등 3대 경매사가 내놓는 작품들의 추정가 총액은 12억~18억달러로, 2년 전인 2022년 28억달러에 비해 절반 미만으로 쪼그라들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최근 미술시장 시황에 대해 “고점에서 내려온 지 2~3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조정장이 계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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