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곡물 가격이 2년 새 25% 하락하는 동안 국내 먹거리 체감물가는 오히려 1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체들이 최근 물가 상승 흐름을 틈타 제품 가격을 올리면서 체감물가를 더 높이는 ‘그리드플레이션(기업 탐욕에 따른 물가상승)’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19.1포인트(2014~2016년 평균 =100)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월(128.7) 대비 7.5% 하락한 것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2022년 2월) 직후였던 그해 4월(159.0)과 비교하면 25.1% 낮아진 수치다.
품목군별로 2년 전과 비교해보면 유지류(-44.9%)와 곡물(-34.5%)의 하락 폭이 컸다. 유제품(-18.1%)과 육류(-4.6%)도 낮아졌다. 설탕군만 유일하게 4.9%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흐름은 국내 소비자들의 체감 물가와는 상반된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식품 기준 생활물가지수는 2022년 4월 109.75(2020년=100)에서 지난달 121.82로 2년 새 11.0% 상승했다.
한국은 세계 곡물 가격에 민감한 국가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21년 발표한 ‘곡물 수급 안정 사업 정책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2017년 세계 곡물 가격지수가 98.0으로 전년(91.9) 대비 6.6% 급등하자 식품 기준 생활물가지수도 94.2로 3.3% 올랐다.
문제는 곡물 가격이 떨어질 땐 정작 가격에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곡물 가격 외에도 가격부담을 높이는 요인이 많다고 설명한다. 수입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환율이 대표적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2022년 4월 1255.9원에서 최근 1400원대를 넘어섰다 다시 1360원대로 내려왔다.
업계에선 인건비나 전기료 부담도 커졌다고 호소한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은 9860원으로 2년 전(9160원)보다 7.6% 올랐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11월 대기업이 사용하는 전기요금만 킬로와트시당 10.6원 인상하기도 했다.
세계 곡물 가격지수가 ‘선물’ 거래가격을 바탕으로 산출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FAO가 발표한 가격지수대로 국내 업체가 수입하려면 6개월의 시간이 걸린다”며 “시차를 고려하면 떨어진 곡물 가격이 나중에 반영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주요 식품업체들은 일제히 ‘호실적’을 거두고 있다. 다음달 초콜릿 제품 가격 인상을 앞두고 있는 롯데웰푸드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도 37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0.6% 증가하면서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다. CJ제일제당과 동원F&B의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도 각각 3759억원과 499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48.7%, 14.8%씩 증가했다.
결국 정부의 업계에 대한 가격 인하 압박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정부는 지난 3월에도 국제 밀가루 가격이 내려가자 제분 업체들에 가격 인하를 권고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장바구니 물가 부담 완화를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업계와 긴밀히 소통하겠다”고 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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