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년 연속 벤처 투자를 받는 데 성공한 스타트업 중 5곳 중 1곳은 '몸값'을 깎아 투자를 유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벤처 겨울' 여파로 스타트업들의 평균 기업가치가 대폭 하향조정된 영향이다. 하반기에도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 조정 양상은 계속될 것이란 게 업계 관측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13일 발표한 '벤처투자 현황 진단 및 대응방안'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에 전년 대비 기업가치가 줄어든 피투자기업의 비중은 20.7%였다. 중기부가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5년 이후 10년 내 최고 수치다. 올해 1분기에 투자를 받은 기업 중 전년에 투자받을 때 매겨졌던 기업가치보다 회사 가격이 떨어진 회사들의 비중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2021년보다 최근으로 올수록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가 더 낮게 평가되는 게 타당하다는 투자사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투자 호황기로 불렸던 2021년엔 전년보다 기업가치를 깎아 투자받은 스타트업 비중이 6.6%에 불과했다. 투자 혹한기가 시작된 2022년엔 이 비율이 12.3%로 올랐고, 2023년엔 15.7%였다가 올해 1분기 20.7%까지 뛰었다. 이전 최고치는 2015년(18.8%)였다. 2년 연속 투자받은 스타트업 중 기업가치를 깎아가면서 투자를 유치한 비중이 3년만에 3배 넘게 늘어난 셈이다. 이 스타트업 중 상당수는 전년에 투자를 받았음에도 현금이 소진돼 곧바로 추가 투자를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가치를 깎아서 추가 투자를 받는 데 성공한 스타트업들은 그나마 다행"이라며 "2020~2021년 대비 밸류에이션을 대폭 낮춰 창업자 입장에서는 '헐값'에 투자를 받으려고 해도 투자 유치 자체가 잘 안되는 회사가 부지기수"라고 했다.
일각에선 수년 전 유동성이 많았던 시기 치솟았던 스타트업들의 몸값 거품이 서서히 빠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들이 몇년 전에 비해 많이 싸졌지만 더 가격이 내려갈 여지가 있다고 본다"며 "어찌보면 정상화 과정"이라고 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작년 대비 좋은 투자 기회가 많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기업가치 조정 과정에서 투자사와 피투자사 간 줄다리기도 벌어지고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아직도 투자사들이 보는 기업가치와 피투자사가 생각하는 기업가치 간 갭이 완벽하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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