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장미의 마을'에 낭만과 서정의 브람스 꽃피우다

입력 2024-05-13 18:42   수정 2024-05-14 16:27


2024년 후쿠야마 국제음악제가 막을 내렸다.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나흘간 무려 15회의 공연으로 꾸며진 알차고 밀도 높은 페스티벌이었다. 올해 음악제의 호스트 오케스트라로 초대받은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세 차례의 스쿨 콘서트와 개막 및 폐막 공연 등 주요 공연을 무리 없이 소화하며 한 단계 올라선 역량을 보여줬다.

12일 후쿠야마의 클래식 음악 허브라고 할 수 있는 갈대와 장미 콘서트홀에서 펼쳐진 폐막 공연은 마찬가지로 후쿠야마 음악제에 올해의 아티스트로 초청받은 아일랜드 피아니스트 배리 더글러스와의 협연으로 이뤄졌다.

폐막제는 첫 곡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으로 시작됐다. 이번 음악제를 통해 한경필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객원 지휘자 박영민은 다소 느린 템포로 포문을 연 뒤 꾸준히 진중한 발걸음으로 음악을 이끌었다. 템포는 느렸지만 박영민은 루바토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작곡가가 음악 곳곳에 숨겨놓은 화성적 제스처와 비장한 정서를 디테일하게 그려 나갔다.

이어진 더글러스와의 협연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꾸며졌다. 바로 전날 리사이틀에서 브람스와 슈베르트, 리스트의 피아노 독주곡들을 연주하며 정통 독일 스타일의 견고한 형식과 스트럭처를 쌓아 올린 더글러스는 하루 만에 화려한 비르투오소로 변신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답게 유려한 음색으로 난해한 기교를 여유 있게 소화하면서도 간과하기 쉬운 난해한 프레이즈와 악상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는 치밀함이 인상적이었다. 화려하게 리드하는 피아노 독주에 발맞춰 악단도 가볍고 기민하게 반응했다.

“젊은 신생 악단이라 그런지 매너리즘이 없고 독주자가 요구하는 바를 신속하게 이해하고 반응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협연하고 싶다.” 더글러스는 한경필과의 협연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2부 순서로 한경필은 브람스 교향곡 2번을 연주했다. 한경필은 음악제로 출발하기 직전 윤한결의 지휘봉 아래 브람스 교향곡 전곡 연주를 완성하며 최근 이 작곡가에 대한 애정과 정성을 표현한 바 있다.

베토벤 서곡과 마찬가지로 박영민과 한경필은 브람스 또한 전반적으로 느린 템포에 낭만적인 해석을 지향했다.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부분은 3악장이었는데, 첫 번째 주제를 연주한 오보에 독주를 포함해 악단의 허리인 목관 악기들이 변화무쌍한 템포 속에서도 서정적인 뉘앙스를 유려하게 소화했다.

4악장부터 태세를 전환해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 악단은 가속페달을 밟으면서도 관현악 총주에 있어 거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코다에 가까워지며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금관 사운드 또한 자신감이 넘쳤다. 한껏 흥분된 분위기 속에 곡이 마무리되자 청중은 열띤 박수로 이들에게 환호를 보냈다. 홍콩에 이어 일본까지 이어진 올해 한경필의 다양한 국제적 여정은 이 젊은 악단이 한 단계 성장할 자양분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후쿠야마=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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