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석유화학기업들도 아시아 지역 생산 설비에 대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중국 석유화학 기업들의 ‘증설 러시’로 에틸렌 가격이 하락한 데 따른 조치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 중동 정유사들도 석유화학 생산설비를 속속 늘리고 있는 만큼 글로벌 기업들의 감산 및 구조조정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영국 석유기업 셸은 최근 싱가포르에 있는 나프타분해설비(NCC)를 매각했다. 인도네시아 석유화학 기업 찬드라아스리와 글로벌 원자재기업 글렌코어의 합작사 CAPGC가 이를 인수했다. 매각가는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찬드라아스리는 이번 계약을 통해 에틸렌 생산능력을 연 90만t에서 200만t으로 확 키우게 됐다.
셸이 아시아 설비를 매각한 건 중국 때문이다. 중국의 기초 유분 자급률이 100%를 넘어서면서 남아도는 석유화학 제품들을 동남아시아 등지에 헐값에 내다 팔고 있어서다. 중간원료인 파라자일렌(PX), 합성수지인 폴리프로필렌(PP) 자급률도 내년께 100%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중국의 저가 수출 공세는 갈수록 거세질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석유화학 시장으로 눈을 돌린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등 중동 정유사들이 생산 설비 확충에 나선 것도 석유화학 기업들의 구조조정 움직임에 한 몫하고 있다. 중동 정유사들은 조만간 석유 수요가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고 사업영역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금은 대다수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한 뒤 나온 나프타를 석유화학 기업에 판매는 데, 앞으론 정유사가 나프타를 직접 분해해 기초유분을 자체 생산하겠다는 얘기다. 중동 정유사들은 이런 계획에 따라 원유에서 직접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COTC 설비 등도 확대하고 있다.
아람코가 석유화학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이 회사는 2018년부터 10년간 석유화학 분야에 1000억달러(약 137조원)를 투자키로 하고, 그 일환으로 울산에 9조3000억원을 들여 초대형 NCC 단지를 건설하고 있다.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구조조정을 서두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 정유사들이 뛰어들면 일반 석유화학 업체보다 50%가량 낮은 가격에 에틸렌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며 "중국의 저가 공세만큼이나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는 위협이 되는 요소”라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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