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커머스 시장도 마찬가지다. 주요 국가에서 아마존은 25%에서 최대 40%의 점유율을 가진 절대강자다. 일본에서도 20%대 점유율로 라쿠텐과 1위를 다투고 있다. 한국에선 쿠팡, 네이버쇼핑이 시장의 40%를 지키며 아마존의 진격을 막아내고 있다.
국내 플랫폼 기업은 글로벌 기업의 공세를 견뎌내며 자생력을 키웠다. 2000년 초반까지 한국 인터넷 시장에선 야후코리아가 절대 강자였다. 네이버 다음 등 후발 주자들은 생존을 걱정할 정도로 고전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네이버는 검색엔진과 한게임, 다음은 카페 등 커뮤니티 서비스를 통해 활로를 찾아냈다. 토종 플랫폼의 반격에 야후 이베이 라이코스 등은 한국에서 철수했다. 이때 얻은 자신감은 국내 플랫폼 기업의 해외 진출에 커다란 자산이 됐다. 첫 배달앱인 배달의민족, 일본과 미국 만화시장을 석권한 K웹툰 등 끊임없이 새로운 플랫폼이 출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네이버는 20년 전부터 일본 시장에 공을 들였다. 2004년 NHN재팬을 설립하면서다. 2005년 출장길에 도쿄 신주쿠 외곽의 일본 지사를 찾은 적이 있다. 매출 1000억원 달성 시기를 묻자 당시 대표는 가당치 않은 목표라며 손사래를 쳤다. 일본 식당이 카드를 받지 않는 사실조차 몰라 당황해하던 일본 법인 초짜 대표의 ‘소심한’ 시절이었다. 20년 뒤 약 10조원에 달하는 연 매출의 40%가 일본 비즈니스에서 발생하고 라인 문제가 한·일 간 마찰로 비화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일본 정부와 소프트뱅크의 네이버 축출 시도가 큰 논란이 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뒤늦게 단호한 대처를 호언하고 야당 대표는 이토 히로부미까지 소환해 반일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을 앞세워 ‘데이터 안보 전쟁’을 노골화한 것이다. 인구의 80%에 달하는 약 1억 명이 사용하고 동네 분리수거 이용료 납부까지 책임지는 생활 인프라 플랫폼의 지분 절반을 한국 기업이 가진 상황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국내 플랫폼 기업들은 그동안 해외에서 나 홀로 시장을 개척해왔다. 규제 대상으로만 보는 정부의 지원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올해 초 공정거래위원회는 독과점을 이유로 ‘플랫폼 공정거래촉진법’(일명 온플법)이라는 새 족쇄까지 들고나왔다. 독과점이 우려되는 국내 플랫폼을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해 규제하겠다는 발상인데, 해외 플랫폼은 놔두고 왜 국내 기업만 옥죄냐는 여론의 질타에 동력을 잃었다.
쿠팡이 알리바바, 테무의 공습에 시달리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 플랫폼 시장은 국경 없는 전장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당국은 여전히 규제 마인드에 함몰돼 있다. 라인 사태는 국내 플랫폼 기업의 자생력과 해외 경쟁력을 다시 들여다볼 기회다. 일본 정부가 3년여 전부터 라인의 지배구조 변경을 물밑에서 추진해왔는데도 우리 정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일본의 행태에 목소리를 높이는 단순한 접근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K플랫폼의 경쟁력을 재평가하고 서막이 오른 글로벌 데이터 보안 전쟁에 어떻게 활용할지 숙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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