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주요 국가가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한 전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AI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인데 여기에는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필수다. AI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막대한 전기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6년까지 미국 AI산업의 전력 소비량이 2023년 대비 최소 10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에너지부도 2035년까지 미국 내 송전망을 최소 2배 이상 늘려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AI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발전소를 짓고 전력망을 증설하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한국도 남의 일이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수도권 일대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 증설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여기에 전기를 공급하려면 서해안과 남해안 일대 원전과 태양광·풍력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낼 수 있는 송전망을 제때 건설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주민과 환경단체 반대로 전력망 구축에 차질을 빚는 일이 적지 않다. 한국전력이 2008년 동해안 일대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동해안 송전선로를 구축하겠다고 밝혔지만 16년이 지난 현재까지 첫 삽조차 제대로 못 뜬 게 대표적이다. 당초 2022년 준공 목표였던 이 송전선로 사업은 2026년까지 미뤄졌는데, 이마저 제때 이뤄질지 불확실하다. 그 결과 동해안 일대 멀쩡한 석탄발전소들이 송전망 부족으로 최근 가동을 멈추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지난해 국가 기간전력망을 깔 때 국가 책임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지금은 인허가, 주민 보상, 재원 조달 등을 공기업인 한전이 도맡아 하는데 이를 정부가 책임지고 추진하는 형태로 바꿔 전력망 건설 속도를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관련 특별법이 의원 입법 형태로 이미 작년 10월 국회에 발의됐다. 하지만 이 법안은 아직까지 소관 상임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이런 식이어선 전기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AI 시대에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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