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평가가 최근 들어 조금 달라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국내 모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에는 90점을 줄 수 있었다면 최근엔 80점도 후한 느낌”이라고 평했다. 한은 직원들이 “총재가 공개 석상에서 불필요한 발언을 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지난달 12일 통화정책방향회의가 끝난 직후 열린 이 총재의 기자회견. ‘물가상승률은 둔화하고 있지만 물가 자체는 여전히 높다’는 취지의 질문에 이 총재는 기후 변화로 인한 사과값 급등 등을 거론하며 “금리로 잡을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총선을 앞둔 지난 3월엔 대통령 참모 출신인 한 국회의원 후보와의 비공개 면담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당시 후보는 SNS에 이 총재와 만난 사진을 올리면서 “(신도시 재건축의) 근본적인 해답은 바로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지난 1분기 국내총생산(GDP) ‘깜짝 성적표’는 중앙은행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이 총재는 이달 2일 간담회에서 “통화정책의 전제가 모두 바뀌었다. 기존 논의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1분기 경기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사실을 솔직히 전했지만, 시장은 “연내 금리 인하가 쉽지 않다는 인식을 내비쳤다”며 매파적으로 해석했다. 3주 전 “미국보다 (금리 인하를) 먼저 할 수도 있고, 나중에 할 수도 있다”고 한 이 총재의 발언과 대비됐다. 당시 발언은 통화 완화 기조로 받아들여지면서 환율시장을 흔들었다. 시장에선 “한은 총재가 한 달 사이 비둘기파와 매파를 오가고 있다”는 얘기가 돌아다녔다.
한때 ‘친절한 총재’로 명쾌한 메시지를 내던 이 총재도 어느 순간 “모호하게 말하는 게 중앙은행원이 배워야 하는 미덕”이라고 실토했다. 시장 전망이 냉탕과 온탕을 수시로 오가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절제와 겸손이 필요한 시기다. 친절한 은행원과 양치기 소년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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