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의 가치는 변한 게 없다. 국내 옥션에 나온 작품 역시 넉넉한 크기와 담백한 빛깔,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국보급’이란 평가를 받았으니 품질 차이도 없다. 차이를 만든 건 50년 이상 된 작품 중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될 경우 해외 반출을 막는 ‘문화재보호법’. 해외 미술관이 높은 가격에 구매하고 싶어도 국외 반출 자체가 불가능해 국내에선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K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이 1962년 만들어진 이 낡은 규제 때문에 저평가를 받는 셈이다.
이 문화재보호법이 17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되면서다. 문화재(文化財)라는 개념도 국가유산으로 대체됐고, 문화재청은 국가유산청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국가유산청은 미래가치 창출에 방점을 둔 K헤리티지(Heritage) 육성에 나서겠다며 기존 보존·규제 위주 정책을 뜯어고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한국 고미술·근현대 미술의 위상이 높아지며 해외에서도 전시·구매 수요가 늘어나는 시점에서 정부가 전향적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
구체적인 변화도 예고했다. 일반동산문화유산의 국외 반출 규제 완화다. 지금까지는 제작된 지 50년 이상 지난 작품 중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는 일반동산문화유산의 국외 반출이 제한됐지만, 앞으론 1946년 이후 제작된 작품들도 특별한 허가 없이 바로 국외 반출이 가능해진다. 예컨대 이중섭이 1950년대 그린 회화도 별다른 걸림돌 없이 해외 아트페어에서 선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미술계에선 여전히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제작 50년’ 기한을 해방 이후로 20여 년 늘리긴 했지만, 이 기준 역시 해외 선진국과 비교하면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화예술의 나라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일정 가격 이하의 비지정문화재는 경매 및 아트페어에서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도록 한다. 국가유산청 출범은 국가 문화적 자산을 활용하는 방식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뜻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유산청 출범식에 참석해 “앞으로는 국가유산을 발전시키고 확산하는 미래 지향형 체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대통령의 약속이 언제쯤 이뤄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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