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추상표현주의 거장 아그네스 마틴(1912~2004) 기획전은 ‘강릉의 랜드마크’를 꿈꾸는 강원 솔올미술관의 야심작이다. 지난 2월 개관 이후 두 번째로 여는 전시회로 ‘고독의 화가’ 마틴의 대표작 54점을 가져왔다. 이탈리아 미술가 루초 폰타나(1899~1968) 작품으로 첫 번째 전시를 꾸밀 때는 볼거리가 부족했다는 말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마틴의 모노크롬 회화 연작 수십 점이 세계적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한 순백의 미술관 건물과 한 몸처럼 어우러졌다.
지난 4일 개막한 ‘아그네스 마틴: 완벽한 순간들’은 전시 내용과 구성면에서 전편에 비해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마틴은 미국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쿠사마 야요이, 조앤 미첼 등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여성 작가’ 중 하나로도 꼽힌다.
마틴의 추상화는 자세히 들여다봐야 진가가 드러난다. 멀리서 보면 새하얀 화면에 불과하다. 가까이 서면 격자처럼 수놓인 선이 보인다. 더 자세히 들어가면 미세한 손 떨림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의 단색화 거장 김환기, 박서보의 작품을 떠올릴 만하다. 동양 철학에서 영향을 받은 그의 그림은 “극도로 단순화되고 반복적인 몸짓으로 정신적인 울림을 선사한다”고 평가받는다.
생전 마틴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추상표현주의 화가다.”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현대 회화에서 미니멀리즘은 감정과 기교를 전부 덜어내는 사조를 뜻한다. 반면 추상표현주의는 작가의 감정을 강조한다.
마틴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그의 일생을 관통한 외로운 감정을 살펴봐야 한다. 그는 혼자였다. 철저히 혼자였다. 1912년 캐나다 시골 농장에서 태어나 엄하고 금욕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부모의 냉대 속에 수영선수, 교사 등 여러 샛길을 걸었다. 그러던 중 뉴멕시코의 광활한 사막에 경외심을 느끼곤 미술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전시는 마틴이 본격적으로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1955년 무렵부터 돌아본다. 마틴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사상가 스즈키 다이세쓰를 만나 동양의 선(禪)과 노장사상을 배웠다. 그의 회화는 단순해졌고 대표작으로 꼽히는 ‘나무’(1964)에 이르자 모든 걸 약분하는 듯한 격자무늬 패턴만 남았다.
‘블루칩’ 작가로 명성을 쌓던 마틴은 50대에 돌연 자취를 감췄다. 주변의 무관심과 외로움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 후유증이 몰아쳤기 때문이다. 편집성 조현병을 진단받고 매일 환청에 시달렸다. 유일한 멘토였던 화가 에드 라인하르트마저 세상을 떠났다. 1967년부터 1974년까지 7년간 아무도 없는 사막과 숲으로 들어가 잠적했다.
전시의 두 번째 섹션은 은둔 생활 이후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명상을 통해 가장 순수한 정신적 상태를 예술로 옮긴 회색 모노크롬 8점이 걸렸다. 생명을 의미하는 흰색과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색의 중간인 회색에서 작가의 내적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아쉽게도 이 시기 작품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조금이라도 균형이 흐트러진 작품은 작가가 파괴했기 때문이다.
전시의 백미는 3층 구석에 숨어있는 8점의 ‘순수한 사랑’ 시리즈다. 마틴이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몰입한 작업이다. 1993년 양로원에서 지낸 그는 매일 작업실을 찾았다.
몸이 쇠약해지며 작품 크기가 줄어든 대신 분위기는 한껏 화사해졌다. 노랑과 하늘, 연분홍 등 파스텔 톤의 은은한 색으로 캔버스를 채우기 시작했다. 인생 황혼기에 이르러 비로소 세상과 화해한 걸까. ‘사랑’ ‘충만’ ‘아기들이 오는 곳’ 등 긍정적인 감정을 담은 1999년 작품의 제목들이 이를 암시한다. 회색 모노크롬 작품들과 달리 반투명한 광채와 기쁨, 삶에 대한 예찬이 담긴 연작을 남긴 마틴은 그로부터 5년 뒤인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솔올미술관은 지난 전시에서 ‘공간예술’을 주제로 루초 폰타나와 곽인식 작가를 연결했는데 이번에는 마틴과 정상화 작가(91)를 함께 접할 수 있게 해줬다. 정상화 작가 개인전 ‘인 다이얼로그: 정상화’를 통해서다. 정상화 전시는 작가의 대표작인 ‘백색추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전시회는 8월 25일까지 열린다.
강릉=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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