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군사학교, 하얼빈공대

입력 2024-05-19 18:04   수정 2024-05-20 00:21

미국 상무부의 수출통제 명단을 ‘엔티티 리스트(entity list)’라고 한다. 미국의 안보를 해칠 우려가 있는 기술이나 상품의 적성국 유출을 막기 위한 것으로, 미국 기업이 이 리스트 단체와 거래할 경우 정부 특별승인을 받도록 해 사실상 수출을 금지하는 취지다.

엔티티 리스트에는 화웨이 같은 기업 외에 중국 대학도 여럿 포함돼 있다. 이들 대학에는 연구 장비와 소프트웨어 공급을 차단하고, 학술 교류도 제한한다. 총 18곳인데, 그중에서도 베이징항공항천대, 베이징이공대, 하얼빈공업대, 하얼빈공정대, 시베이공업대, 난징항공대, 난징이공대 등 7개 대학이 중점 감시 대상이다. 모두 중국인민해방군과 연계하에 무기·장비 개발 및 현대화를 지원하는 군사대학이다. 중국에서는 이 7개 대학을 ‘국방의 7공자(國防七子)’라고 부른다.

국방칠자 중 가장 유명한 학교가 하얼빈공대(HIT)다. 올해 104년 역사를 지닌 중국의 MIT로 불리는 곳이다. 중국 대학 중 체스 게임용 컴퓨터와 아크 용접 로봇을 가장 먼저 개발했다. 특히 로켓과 미사일, 우주, 핵 분야 연구로 유명하다. 하얼빈공대는 연구 예산의 절반 이상을 군사 관련 부문에 쓰고, 졸업생의 30%는 국방 분야에 취업한다. 2020년 미사일 개발에 미국 기술 활용 혐의로 엔티티 리스트에 포함됐다. 북한 과학자와 기술자들에게 핵기술을 교육해 유엔 제재 위반 의혹도 받고 있다. 과거 중국군에 기술을 넘겨 간첩 유죄 판결을 받은 보잉 엔지니어, 노르웨이 유학 중 초음속 순항 미사일 기술을 빼돌려 추방된 중국군 로켓부대 과학자 등과도 연루돼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국 방문 기간에 이 학교를 찾았다. 하얼빈공대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각별한 인연이 있다. 1920년 설립 당시 중러기술공업학교가 모태다. 러시아 전투기 수호이의 개발자인 파벨 수호이를 배출한 바우만 모스크바 국립공대와 푸틴의 모교인 상트페테르부르크대와도 밀접한 협력을 맺고 있다. 외신은 푸틴이 미국을 모욕하기 위해 제재 학교를 일부러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대미 연합전선이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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