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세, 경제·법률적으로 말도 안돼…부실기업 퇴출 늘릴 것"

입력 2024-05-19 18:27   수정 2024-05-20 00:57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그동안 민감한 금융 현안을 정면 돌파하는 행보를 보였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 주가연계증권(ELS) 배상문제에도 거침없었다. 그의 직선적인 업무 스타일은 미국 뉴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6일 뉴욕 투자자들과 만난 직후 연 기자간담회에서 공매도, 횡재세, 상속세, 상법, 기업 밸류업을 비롯한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과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원천 금지된 공매도 재개 계획을 밝힌 데 이어 부실 상장기업의 퇴출 기준과 방향도 제시했다. 여기에 상속세를 손질해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공매도는 언제쯤 재개되는가.

“불법 공매도를 방지하는 공매도 잔량 시스템 구축에 시간이 걸리는 데다 공매도 재개와 관련한 법률적 쟁점도 있다. 법 개정 없이 시행령으로 공매도를 재개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개인적 욕심과 계획으로는 오는 6월 공매도 거래를 일부 재개할 수 있다고 본다. 기술적·제도적 미비점 때문에 더 늦어진다면 재개 시점을 두고 시장 참가자들과 소통할 것이다.”

공매도 재개를 위해 금융당국은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기관이 공매도 잔량 정보를 한국거래소 등 외부에 공유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7월에 공매도를 재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법안이 국회에 계류되면서 7월 재개가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 원장은 국회를 거치지 않는 시행령을 바탕으로 공매도 관련 근거를 마련하고, 6월에 공매도를 일부 재개하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이다.

▷부실 상장사 퇴출 계획은 세웠나.

“증시에 들어오는 기업 수에 비해 퇴출되는 기업은 현저히 적다. 낮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퇴출의 주된 지표가 될 수는 없다. 상장제도 취지와 맞지 않는 상장사나 경영진이 불법적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수단으로 사용하는 상장사가 대상이 될 수 있다.”

▷횡재세 도입 논의가 진행 중이다.

“횡재세는 그 자체가 나쁘다.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횡재세는 경제적으로 말이 안 되고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도 어렵다. 법률적으로도 위헌 요소가 있다. 또 횡재세는 시장과 은행의 행태를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런 형태의 횡재세가 추진되면 강하게 반대하거나 문제점을 지적할 것이다.”

이 같은 발언은 은행과 정유사가 일정 기준 이상 이익을 냈을 때 초과분에 세금을 물리는 횡재세 도입을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상속세 개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배당소득 분리과세와 법인세 관련 개편 논의에는 참여하고 있다. 상속세 개편은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한 사안이다. 창업자의 은퇴 시점이 다가온 중견기업들이 (상속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M&A를 하거나 폐업한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승계 과정에서 빚어지는 마찰을 줄여 기업이 영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자는 논의를 하고 있다.”

▷‘주주 보호’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주주에 대한 신의성실 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을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 정부가 이를 공론화하지 않으면 투자자들이 기업 밸류업 추진 의지에 의심을 품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공청회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주주 보호’ 상법 개정안은 기업 이사의 의무를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한다’라고 규정한 현행 상법 제382조의 3 조항 내용을 고치는 것이다. 법을 손질해 ‘회사는 물론 주주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한다’는 내용을 담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상법 개정으로 소액주주들이 이사를 상대로 배임 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행동주의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주주들의 이익을 적극 대변하는 행동주의 활동은 도와야 한다. 일부 행동주의는 과도한 면이 있어 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이 된다. 긍정적 행동주의가 시장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특정 행동주의를 지지하지는 않는다.”

▷ELS 제도 개선 논의는 어떻게 돼가고 있는가.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다. 은행의 위험자산 판매를 완전히 막자는 의견도 있다. 이 같은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일리도 있다. 이 같은 다양한 의견을 종합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의견을 도출하는 데 몇 달이 걸릴 것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어떤 논의를 했나.

“SEC에 가상자산 상품과 관련해 우리 제도를 설명했다. 가상자산 상품에 대한 미국 규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물었다.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는 국내 도입 여부를 떠나 여러 고민이 필요하다. 정책적으로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이와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증권·가상자산 관련 불공정 거래 조사와 공조 강화 방안도 논의했다. 여기에 미국의 가상자산 입법 동향, 양국 간 정보공유 강화 방안 등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다.”

김익환 기자/뉴욕=나수지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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