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법률가 천국이 소환한 '법조인 망국론'

입력 2024-05-20 17:29   수정 2024-05-21 00:34

법조인 정치의 전성시대다. 노무현, 문재인, 윤석열 등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이 모두 법조인 또는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종편과 유튜브에 정치평론 변호사가 넘쳐나고 제22대 총선 법조인 출신 당선자도 제21대의 46명을 넘어 역대 최고인 61명이다. 법조인이 국정과 정치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에 따르면 영국의 2019년 하원의원 당선자 650명 중 47명(7.2%), 프랑스의 국민회의(하원) 의원 577명 중 28명(4.8%), 일본의 2021년 중의원 당선자 465명 중 14명(3%)이 변호사 출신으로 우리보다 훨씬 비율이 낮다. 주요국 가운데 법조인 출신이 많은 나라는 연방하원 의원 435명 중 로스쿨 출신 130명(30%), 판사와 검사 출신 41명(9.4%)인 미국이 유일하지만 정치·사회적 배경은 우리와 차이가 있다.

법조인은 적지 않은 한계를 가진 존재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수십 가지 능력 중 하나에 불과하다. 우수한 성적은 단지 그 사람이 시험 치기의 명수였음을 증명할 뿐이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 도전하려 하지 않고 과거의 성공 체험에 매몰돼 독단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법조인의 가장 큰 문제는 경영과 경제를 모르고 정책 수립과 집행, 글로벌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법률과 판례가 세상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기 쉽고 상상력과 창의력도 부족하다. 사후적 판단에는 능하지만, 밑바닥부터 무에서 유를 창조해본 경험이 없다. 을의 심정을 헤아리는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법 이면에 있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 법조인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갖거나 능력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책임지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도 지적돼야 한다. 600억원의 예산만 낭비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실패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구속까지 됐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이재용 삼성 회장의 1심 무죄 판결에 대한 수사책임자들의 침묵도 이해하기 어렵다. 1200여 건의 조직적 채용 비리가 확인됐지만,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대법관 출신 중앙선관위원장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대장동 개발 비리에 연루된 박영수 전 특검과 50억 클럽 논란의 권순일 전 대법관 사례가 보여주듯 법조인들이 특별히 청렴하거나 도덕적인지도 의문이다. 엄정공평 불편부당의 사법 정신을 망각한 정치검사, 정치판사들이 넘쳐나고 정치권력을 목표로 법기술자가 돼 법의 허점을 이용한 온갖 궤변과 논리가 난무하는 현실은 중병이 든 이 시대 법조인의 불행한 단면을 보여준다.

법조인 출신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밀어붙인 정책의 성과는 어떠한가. 행정부처의 세종시 이전으로 국가 행정의 비효율성은 증가했고 정책의 질도 떨어졌다. 공기업 지방 이전으로 국토 균형 발전이 이뤄졌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소득주도성장과 주 52시간 노동정책은 민생과 경제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조직적 금융범죄와 사기범죄가 급증하며 범죄자 천국이 돼간다. 소통하는 열린 대통령실을 구현하겠다며 용산으로 옮겼지만, 불통과 독선의 인상만 남겼다. 충분한 검토 없이 강행한 의료개혁은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졌다.

조선은 상업과 기술을 천시하고 국제 정세에 어두웠던 양반 사대부들이 도덕을 정치적 무기로 삼아 공리공론과 당쟁을 일삼다가 자멸했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반도체 등 첨단기술 패권 전쟁이 격화되고 물가 급등으로 기업과 민생 경제의 어려움은 날로 커져만 간다. 총선 과정에서 확인된 절박한 민심을 외면한 채 특검법 등 소모적인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는 정치권은 조선으로 퇴행하고 있다. 그 중심에 법조인 출신들이 있으니 법조인 망국론이 어찌 과장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관료, 교수, 언론인도 크게 처지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자리든 그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자릿값을 해야 한다. 제자리에 있으므로 자존(自存)을 깨닫고 제자리에 있으므로 자존(自尊)을 되찾아 각자 책임과 사명을 다하는 사회가 되는 길은 왜 이리 험난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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