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영부인 '단독 외교'

입력 2024-05-20 17:48   수정 2024-05-21 00:36

영부인 외교는 전선에서 시작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여사가 1942년 히틀러에 맞서 고군분투하던 영국을 단독 방문하면서다. 엘리너는 미군 지프를 타고 곳곳을 살피며 영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조 바이든 대통령 부인 질 여사도 2022년 5월 동유럽을 돌던 중 예고 없이 우크라이나 서부 국경지역을 찾았다. 그곳에서 우크라이나 영부인을 만나 “잔인한 전쟁은 중단돼야 한다”며 미국의 지지를 재확인했다.

논란이 된 영부인 외교도 있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은 30대 초반이던 1962년 인도 친선 방문 9일간 22벌의 옷을 갈아입어 “외교 방문이 아니라 패션쇼”란 혹평을 들었다.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홀로 찍은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요즘 전직 대통령 부인의 6년 전 행보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재등장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통해 김정숙 여사의 2018년 3박4일 인도 방문을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라고 평가하면서다. 곧바로 여권에선 “단독 외교가 아니라 단독 외유”라는 비판이 나왔다. 인도 정부가 김 여사를 먼저 초청했는지, 아니면 문 정부가 김 여사 초청을 인도에 요청했는지를 두고도 공방이 오간다. 논란의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 부인도 소환된다. 야당은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기 위한 물타기”라고 반격하고 여당은 “특검한다면 김정숙 여사부터 하자”고 날을 세운다.

영부인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불린다. 국민은 대통령을 뽑았지 영부인을 뽑은 건 아니다. 하지만 영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국민의 이목을 끈다. 잘하면 관심과 찬사를 받지만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비판의 화살이 쏟아진다. 영부인에 대한 국민의 호불호가 정권의 인기를 좌우하기도 한다.

역대 정부를 보면 스스로 몸을 낮추면서 대통령이 가지 않는, 그늘진 곳을 찾은 영부인이 국민에게 사랑받은 때가 많았다.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가 맞는 팩트인지도 논란이지만, 전직 대통령이 자화자찬하듯 평가하다 보니 괜히 논란만 더 커진 게 아닌가 싶다. 긁어 부스럼을 만든 느낌이다.

주용석 논설위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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