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정부의 해외 직접구매(직구) 규제 대책 발표와 이후의 혼선에 대해 20일 공식 사과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같은 혼선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책의 사전 검토 강화, 국민 의견 수렴 강화 등 재발 방지책 마련을 지시했다. 직구 규제 계획 백지화와 대통령실 공식 사과는 윤 대통령이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최근 해외직구와 관련한 정부 대책 발표로 국민들께 혼란과 불편을 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16일 유모차, 완구, 조명기구, 살균제 등 80개 품목에 대해 KC 인증(안전 인증)이 없는 경우 해외직구를 원천 차단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올 하반기 법 개정을 추진하되, 법 개정 전에도 국민 건강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으면 수입 통관을 보류하는 방식으로 해당 물품의 국내 반입을 막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하지만 소비자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일자 정부는 19일 정책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참모들이 주말 사이 정부 부처에 백지화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까지 잇따라 비판 메시지를 내놓자 대통령실이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성 실장은 “KC 인증을 받아야만 해외직구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침이 국민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소비자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했다”며 “저렴한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애쓰시는 국민에게 불편을 초래한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KC 인증과 같은 방법으로 제한하지 않고, 소비자 선택권과 안전성을 보다 균형 있게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을 심도 있게 마련해 나가도록 하겠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삼아 정부의 정책 신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 들어 해외직구 제품의 안전성 논란이 이어졌고, 14개 부처의 실무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상황이었다”며 “안전성 강화에 방점이 찍히다 보니 소비자 선택권 등에 대한 우려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진 측면이 있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TF에 참여하지 않았고, TF의 결정은 정책실장 등에게 제대로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정책의 사전 검토 강화 △당정협의를 포함한 국민 의견 수렴 강화 △브리핑 등 정책설명 강화 △정부의 정책 리스크 관리 시스템 재점검 등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앞으로 당정협의 없이 설익은 정책이 발표돼 국민 우려와 혼선이 커질 경우 당도 주저 없이 정부에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낼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윤 대통령이 지시를 수행하는 데만 집중하는 관료사회를 질책한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관료 사회에 경고 메시지를 주기 위해 이날 예정된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4·10 총선 이후 정부의 여론 대응 속도가 빨라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책 발표 사흘 만에 보류를 지시하고, 나흘 만에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직접 사과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설명이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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