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큰손’으로 꼽히는 국부펀드 싱가포르투자청(GIC)이 서울 마포구 주택 개발 사업에서 58%에 달하는 손실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에 따른 결과로 해석된다. PF 만기연장 요건이 까다로워지면서 이에 부담을 느끼고 ‘울며 겨자먹기’로 사업장을 넘긴 것으로 풀이된다.
2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신한자산운용은 조만간 서울 마포구 도화동 도시형생활주택 개발 사업장을 마스터투자운용으로부터 760억원에 인수한다. 기존 브릿지론 대출채권과 사업 권한을 모두 사들여 새롭게 개발 사업을 이끌어나갈 예정이다. 신한운용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PF 정상화 펀드 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캠코 PF 펀드가 활용되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신한운용은 캠코 펀드의 첫 투입인 삼부빌딩에 이어 이번 인수까지 나서며 벌써 펀드 약정액의 절반 가까이를 소진했다.
이 사업장은 국내 부동산 대체투자 운용사 마스턴투자운용이 2020년 ‘마스턴제95호도화PFV’를 설립해 개발을 추진해온 곳이다. GIC가 투자자로 참여했다. 마스턴운용은 지상 23층, 지하 5층짜리 도시형 생활주택을 짓기 위해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위치한 부지를 매입해 인허가까지 받았다. 연면적 기준 2만7083㎡(약 8192평)에 달하는 건물을 지으려 했지만 2022년부터 급속도로 부동산 경기가 냉각하면서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GIC는 이 사업장의 주식을 매입하고, 대출을 실행하는 등 431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180억원만 건지고 매각하기로 했다. 약 58% 손실률을 기록한 셈이다. 지역 단위 농협과 신협 등으로 구성된 사업장 대주단은 브릿지론으로 대출해줬던 570억원을 모두 회수하게 될 전망이다.
국내 부동산을 싹쓸이하며 두각을 나타내 온 GIC가 손실을 보고 매각에 나선 것은 금융당국이 실시하는 PF 구조조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이 개발 사업장은 대주단으로부터 지난해 한 차례 만기 연장을 받아냈으나 다음달 새로 만기 연장을 앞두고 주요 대주단이 연장 불허 입장을 밝혔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말부터 ‘옥석 가리기’ 압박을 넣고 최근 PF 정상화 방안을 통해 만기 연장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등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어 대주단이 만기를 연장해주지 않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GIC도 더 이상 개발을 끌고 가기 어렵단 판단을 내린 것이다.
앞으로 여러 개발 사업장이 손실을 안고 줄매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PF 구조조정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3일 PF 사업성 평가 등급을 현행 3단계에서 4단계로 세분화하는 등 PF 정리에 속도를 내는 방향으로 PF 정상화 방안도 내놨다. 2회 이상 만기를 연장한 PF 대주단협약 사업장은 이제 4분의 3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연장이 가능해진다. 또 사업성이 떨어지는 사업장에 돈을 빌려준 대주단은 금융당국에 재구조화, 경·공매 등의 개선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23조원 안팎의 PF 대출이 부실 우려를 안고 있어 구조조정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유의·부실 우려 사업장을 전체 PF 규모(230조원)의 5~10%로 추산했다. 경·공매 대상 PF 사업장은 전국 PF 사업장 5000여개 가운데 150개 안팎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대거 쏟아질 경·공매 물량을 받아줄 수 있는 금융기관이 없다는 불안감이 확대되고 있다. ‘뉴 머니(신규 자금)’를 끌어올 유인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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