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위기 커지는데…'부실 방파제' 낮춘 4대 금융지주

입력 2024-05-22 18:10   수정 2024-05-23 01:29

주요 금융지주들이 올해 들어 부실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쌓는 충당금 규모를 전년 대비 15% 넘게 줄인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주주에게 지급하는 현금배당은 40% 가까이 확대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금융권이 위기 대비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금융지주들이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배상으로 훼손된 주주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충당금을 줄이고 배당만 확대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ELS 손실 최소화?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금융지주가 지난 1분기 새로 적립한 충당금은 총 1조4462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1조7180억원) 대비 2718억원(15.8%) 줄어든 규모다.

KB금융의 충당금 적립액이 2023년 1분기 6682억원에서 올 1분기 4284억원으로 2398억원(35.9%) 줄어 가장 큰 감소폭을 보였다. 같은 기간 신한금융은 4610억원에서 3779억원으로 831억원(18%) 감소했다. 하나금융이 쌓은 충당금 역시 3272억원에서 2723억원으로 549억원(16.8%) 축소됐다.

충당금은 금융사가 빌려준 돈을 되돌려 받지 못하는 경우와 같이 자산에 부실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 선제적으로 쌓아놓는 자금을 의미한다. 회계적으로는 비용으로 인식되는 탓에 충당금이 늘어나면 금융사의 이익은 줄어든다. 금융지주들은 부동산 PF 위기론이 커지던 지난해 본격적으로 충당금을 확대했다.

작년까지 앞다퉈 충당금 적립액을 늘린 금융사들이 올해 갑자기 적립액을 줄인 이유로는 홍콩 H지수 ELS 배상으로 인해 대규모 일회성 비용이 발생한 점이 꼽힌다. 4대 금융지주는 지난 1분기에만 ELS 배상 비용으로 1조3234억원이 발생했다. 막대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충당금을 줄였다는 분석이다. 특히 홍콩 H지수 ELS 배상 비용이 75억원에 불과한 우리금융지주의 충당금 적립액은 다른 3개 금융지주와 달리 작년 1분기 2616억원에서 올해 1분기 3676억원으로 40.5% 늘었다.
○PF 위기는 작년보다 고조돼
충당금과 달리 금융지주의 배당 지급액은 늘었다. 4대 금융지주의 현금배당액은 작년 1분기 6341억원에서 올 1분기 8817억원으로 2476억원(39%) 증가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홍콩 H지수 ELS 배상으로 훼손된 주주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금융지주들이 충당금을 줄여서라도 배당을 늘린 분위기”라며 “마침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어 금융지주들이 배당에 적극 나설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금융지주들은 충당금 적립액 감소가 홍콩 H지수 ELS 사태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지난해 워낙 많은 충당금을 쌓았던 데 따른 기저효과”라며 “2022년 1분기와 비교하면 금융사들의 충당금 적립액이 크게 늘었다”고 해명했다. 다른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충당금 적립을 근거 없이 늘리기만 하면 분식회계에 해당한다”며 “충분히 위기를 대비할 수 있을 만큼 충당금을 쌓았다”고 했다.

하지만 부동산 PF업계의 위기는 올해 들어 더욱 고조되고 있다. 태영건설은 작년 12월 28일 워크아웃을 신청해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고, 전국 미분양 주택은 올 3월 말 기준 6만4964가구로 4개월 연속 증가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2022년 말 1.19%에서 작년 말 2.7%로 뛰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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