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상반기에 주식의 매매·중개 기능을 하는 대체거래소(Alternative Trading System, ATS)가 새로 출범한다. 한국거래소(KRX) 전신인 대한증권거래소가 1956년 처음 문을 연 이후 70년 가까이 계속된 증권거래 독점체제가 깨진다. 대체거래소는 미국에서는 70여 곳, 영국·일본 등 다른 선진국에서도 활성화돼 있다. 한국에서는 2013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복수 거래소 설립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으나 10년 이상 유보돼왔다. 거래의 독점체제가 끝나고 경쟁체제가 된다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 이용자 입장에선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하지만 증권거래 시간이 현행보다 5시간 30분 더 늘어나 하루 12시간 주식 사고팔기가 가능해져 온 나라가 ‘코인판, 투기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매매시간이 늘어나는 거래소 경쟁체제, 바람직한가.
경쟁체제에 따른 소비자 이익은 단순히 수수료 절감만이 아니다. 거래할 수 있는 금융 및 파생 상품이 확대되고 관련 서비스 제고 경쟁이 뒤따를 것이라는 점도 고무적이다. 새로운 금융상품과 보다 나아지는 주문 방식은 한국의 자본시장을 선진화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 자본의 축적뿐 아니라 해외 자본을 한국 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과거 홍콩 등 국제금융의 선도시장에 다양한 자본이 몰려든 것과 비슷한 효과다. 투자 시간이 늘어나게 되면 바쁜 일과 시간에 증시를 이용하기 힘들었던 일반 직장인 등에게도 좋다. 출근 전이나 퇴근 시간 이후에 시간에 쫓기지 않고 좀 더 편안하게 투자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편리가 개선되면서 투자자들은 실시간 해외투자도 가능해진다. 미국 등지의 시장과 바로 연결되는 통로(거래소)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증시의 기본 인프라가 확충되는 것을 계기로 한국 시장의 구조적 단점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떨쳐내고 기업들의 ‘밸류업’까지 기대해볼 만하다.
안 그래도 한국의 곳곳에서 투기판이 형성되고 있다. 한국에 암호화폐 투자 붐이 크게 일고 있는 것을 경계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전 세계 암호화폐 거래에서 한국 원화가 미국 달러를 제치고 ‘사용량 1위’가 됐다. 세계적인 경제 매체인 블룸버그통신은 전문 조사업체의 자료를 인용해 “2024년 1분기 한국 원화의 암호화폐 거래액이 4560억 달러로 미국(4450억 달러)보다 많았다”고 보도했다. 3위인 유로화(590억 달러)보다 월등히 많다. 한국의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가입자 유치를 위해 수수료 제로(0) 마케팅에 나서는 등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거래비용을 줄이면서 이런 결과가 됐다. 이미 한국거래소의 수수료도 0.0027%로 0에 가깝다. 이미 수수료가 너무 낮아 더 낮춘다는 게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기형적인 암호화폐 시장처럼 또 하나의 코인 투기판만 조장할 공산이 크다.
새 거래소가 투기적 거래 기회를 확대하는 공식 창구가 될 수도 있다. 가령 두 거래소 간 가격 차이를 이용한 차익거래와 시세조종이 나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경쟁체제를 지향하는 도입의 취지는 사라진다. 자칫 신설 거래소가 기존 거래소의 ‘대체’ 기능은 하지 못한 채 ‘보조’ 기능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등록된 암호화폐 거래소의 활성 이용자가 645만 명(2023년 말 기준)으로 전 국민의 10%를 넘는다. 이것도 과한 숫자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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