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노무현 없는 노무현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낸 참여 정치의 시대부터 '당원 중심 대중정당'의 길까지, 아직 도달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우리가 반드시 나아가야 할 미래입니다."
'당원 중심 정당'으로 당 재편을 시도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3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를 맞이해 '노무현 정신'을 언급했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언제나 노무현 대통령께서 먼저 열어주신 길 따라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도 지치고 흔들릴 때마다 대통령님의 치열했던 삶을 떠올리겠다"며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정치가 국민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노무현 정신'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이날 노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 참석한 뒤 당원들과 '당원 주권 시대' 컨퍼런스를 진행하는 이 대표가 노 전 대통령이 강조한 '참여 정치'를 자신의 주도하는 '당원 중심 정당'과 동일시한 대목으로 보인다.
이 대표가 말한 대로, 당원 중심 정치와 노 전 대통령의 참여정치는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었을까. 노 전 대통령의 팬덤가 이 대표의 팬덤은 닮은 구석이 있을까.
이재명 대표의 팬덤은 초기에는 노 전 대통령이 강조했던 '깨시민'(깨어있는 시민)을 자처하며 모여들었고, 지금은 소위 '개딸'이라는 별칭을 만들어 그들만의 '팬덤 문화'를 만들었다. 이 대표를 '마을 이장'이라고 표현하는 이들은 '재명이네 마을' 카페에서 현안마다 동일한 목소리를 내며 소속 의원들에게 힘을 행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소위 '개딸' 권력이 당을 좌지우지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면서다.
일부 과거의 노사모는 '개딸'로 변모하기도 했다. 지난 대선에서 '노사모' 회원 723명은 이재명 후보에 대해 지지를 선언하며 "이재명 후보는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거치면서 개혁적인 행정가, 실천하는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증명했으며 이재명 후보야말로 노무현과 문재인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정치를 개혁하고 민주 정부의 정통성을 이어 나갈 적임자이자 실용적인 정부 운영으로 유능하게 개혁과제를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고 했다.
민주당에서 '수박'(비이재명계 민주당 의원을 낮잡아 이르는 말)으로 찍혀 탈당하고 새로운미래에 합류한 김종민 의원은 지난해 "제가 노사모들과 대화하는 담당 비서관이었다"며 "(노사모는) 서로 다른 의견이 공존하는, 토론이 가능했던 모임이었다"고 말 한 바 있다.
노 전 대통령과 이 대표가 '팬덤'을 대하는 모습도 사뭇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가 위기의 순간 '개딸 소집령'을 내리는 것과 달리 "(노 전 대통령은) 그분들에게 자기를 버리라는 얘기를 5년 내내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노사모를 향해 "노사모는 노무현을 위한 조직이 아니다", "노무현을 버리고 역사 속으로 들어가라"는 등의 당부를 했었다.
재임 기간 내내 '개딸'의 공세에 시달렸던 김진표 국회의장은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이 대표의 팬덤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말을 남겼다. 그는 지난 22일 사랑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극단적 팬덤 정치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배제하며 공격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팬덤 정치의 폐해가 너무 크다"고 했다.
김 의장은 특히 "요즘 SNS가 널리 보급되면서 자연스럽게 팬덤화가 일어나는데, 이게 초기 노사모와 같은 건강한 팬덤과 달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배제하고 집중 공격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어 안타깝다"며 "노사모는 노무현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비판했었다"고 개딸과 노사모를 비교했다.
그러면서 "당원이 국회의원 당선에 기여하는 득표율은 5%밖에 안 될 것이다. 나머지 90~95%는 당원도, 팬덤도 아니라 일반 국민"이라며 "국회의원은 당원이나 자기를 공천해 준 정당에 충성하기 이전에 국민과 유권자 눈높이에서 정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노사모는 노 전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파병을 결정하자 이를 거침없이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일부 노사모 회원은 이후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거세게 반대했었다.
'노사모'는 비교적 건강한 팬덤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지금의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이 사안마다 단일한 목소리는 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이와 관련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았던 노사모는 결국 '노무현을 지키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그런 경험이 지금의 개딸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니 이제는 이재명 대표의 팬덤을 향해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라며 해석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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