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소주나 제로 소주나 당이 별 차이 없다니...다이어트 중이라 제로소주 찾아마셨는데 허무하네요."
서울에 거주 중인 공무원 임 모(29) 씨는 "술자리에서 꼭 제로 소주를 시켰다"며 이같이 말했다. 임씨는 "평소 술을 좋아하다 보니 살도 부쩍 쪄서 다이어트를 시작한 상황"이라며 "주당 다이어터들에게 제로 소주는 정말 필요한 제품이었는데 일종의 상술이었다고 생각하니 씁쓸하다"고 말했다.
당을 함유하지 않았다고 선전하며 인기를 끌어온 이른바 '제로 소주'가 사실 일반 소주와 당 및 열량이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건강을 고려해 해당 제품을 구매하던 소비자들은 배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 국내 판매 중인 제로 소주 5개 종류에선 당류가 검출되지 않았다. 다만 비교군인 일반 소주 역시 당류가 100mL 당 평균 0.12g으로 매우 낮아, 제로 소주로 표기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현재 식약처는 고시를 통해 음료(주류) 100mL 당 당류 0.5g 미만일 경우 '무당류' 강조 표시를 허용하고 있다. 즉 '일반 소주에 '제로'를 붙여 팔아도 합법인 셈이다.
게다가 이처럼 미세한 차이는 소주 열량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물론 당이 없는 제로 소주가 일반 소주 대비 약 3~14%가량 열량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알코올이 덜 함유된 데 따른 결과일 뿐, 당과는 큰 연관성이 없다. 한국소비자원 시장조사국 관계자는 "알코올은 1g당 7kcal의 열량을 갖는데 제로 소주는 일반 소주보다 전체적으로 도수가 낮다"며 "당이 없어서가 아니라 알코올이 덜 들어가서 칼로리가 낮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나나 동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제로 소주는 여러 당류 중에서 열량을 가지고 있는 단당류, 이당류만 뺀 뒤 생산한 것"이라면서 "두 종류의 당이 빠졌다고 해도 일반 소주와 열량 차이는 미비하다. 아마 안주 몇 점이면 쉽게 상쇄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에 제로 소주가 확실히 건강에 더 낫다고 생각했던 소비자들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이 소비자 2000명을 상대로 설문한 결과, 이 중 무려 68.6%(1371명)가 '제로 소주가 일반 소주보다 열량이 아주 낮을 것'이라고 응답한 바 있다.
직업 댄서로 활동하며 평소 회식 자리가 잦은 편이라는 강 모(30) 씨는 "지인들 추천으로 제로 소주를 마시게 됐다. 일반 소주를 마실 때보다 살이 덜 찐다고 느낀 것은 아니지만 뭔가 관리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며 "일반 소주랑 사실상 똑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케팅에 속았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30대 여성 A씨는 한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에 "일반 소주를 마시면 죄책감이 들어서 입에 잘 안 맞아도 제로 소주를 마셔왔다"며 "그동안 괜히 유난 떤 것 같아 민망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열량이 별로 차이 안 난다고 하니 앞으로 일반 소주를 편하게 마셔야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문가들은 소비자에게 혼동을 주는 무차별적인 '제로 마케팅'의 확산을 경고하고 나섰다. 특히 탄산음료, 주류 등 평소 몸에 해롭다고 인식되는 식품에 대해 '많이 먹어도 된다'는 식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한 주류 회사 관계자는 "제로 마케팅이 음료 부문에서 먼저 시작되면서 소비자들의 자체적인 기대치가 컸던 것 같다"며 "의도적으로 술이 몸에 좋다는 식의 마케팅을 펼치진 않았다. 그저 트렌드와 소비자의 필요에 맞춘 제품을 내놓았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당연히 몸에 좋은 음식은 칼로리와 당이 낮다 보니 제로 제품을 내놓을 필요가 없지 않겠나"라며 "그렇지 못한 식품들이 제로 마케팅을 통해 건강한 이미지를 갖게 된다는 점이 우려된다. 특히 주류에까지 이러한 전략이 확산한 건 상당히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기업의 마케팅 전략을 강제적으로 막을 순 없으므로 제로 식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려는 당국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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