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먼저 ‘재즈를 알고 싶다’며 나를 찾아왔지만, 우리의 대화에서 음악 이야기는 거의 없다. 거꾸로 그로부터 아이작 뉴턴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 관해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창백한 푸른 점>을 듣는다. 물리학으로 우주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무척 재미있다. 그럴 때면 재즈 음악을 낮게 틀어놓는다. 재즈와 물리라고 하면 서로 너무 다른 듯하지만 제법 이야기가 잘 통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별 보는 걸 좋아했다. 깊은 밤 옥상에 누워 별을 보다가 추위에 떨면서 내려오는 일이 잦았다. 그때 큰 강물처럼 하늘을 수놓았던 은하수를 잊을 수 없다. 은하수는 항성의 무리다. 별이면 다 같은 별 같지만,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것만 별(항성·Star)이라고 한다. 지구나 화성처럼 빛을 내지 못하는 행성은 별이 아니다. 태양처럼 빛을 내는 항성만 해도 4000억 개가 있다는 우리 은하, 이런 은하가 수천억 개나 된다는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우리가 듣는 음악도 밤하늘의 무수한 별처럼 헤아리기가 불가능하다. 눈에 보이는 별보다 감춰진 별들이 더 많듯, 숨어 있는 음악도 무수하다. 그중에서도 재즈는 보려고 노력해야 보이는 소행성 같은 존재다. 재즈를 알고 싶어 하는 물리 선생에게 나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아는 사람은 드물지만, 태양계 소행성 중에 재즈 음악가의 이름이 붙여진 별이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미국의 여성 색소폰 연주자인 제인 아이라 블룸(Jane Ira Bloom)의 이름을 따서 붙인 ‘재너이라블룸(Janeirabloom)’이라는 소행성이다. 지름이 8㎞가 채 안 되고 스스로 빛을 내지도 못하기에 이 소행성을 보려면 특수한 망원경이 필요하다.
블룸은 ‘나사 아트(NASA ART)’ 프로그램의 의뢰로 1992년 작곡했다. 곡의 제목은 ‘가장 먼 은하(Most Distant Galaxy)’로, 전체를 즉흥 연주로 완성한 전위적인 재즈다. 악기 소리는 미지의 사운드처럼 들리고 어둠, 고독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 곡 외에 우주를 노래한 재즈곡으로는 ‘별 무리(Stardust)’나 ‘나를 달까지 데려다오(Fly Me To The Moon)’ 같은 것도 있다.
물리 선생의 이야기가 별과 우주를 넘어 양자물리학에까지 이르면 어려워진다. 원자나 전자 같은 미시적인 입자를 연구한다는 이 분야를 접하면 졸음부터 쏟아진다. 관련 유튜브 강의를 들어봐도 속 시원치가 않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먼도 “양자역학을 완벽히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다만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론만은 머릿속에 남아 있다. 상자를 여는 순간 고양이가 살거나 죽거나 결정된다는 것은 ‘관측하는 순간 확정된다’ 또는 ‘관측하는 순간 변화한다’는 뜻이고 관측하지 않을 때는 5 대 5의 확률로 중첩돼 있다는 의미다. 반반이라…. 죽어가는 고양이(?)도 아니고 이게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재즈라는 음악은 ‘감상하는 순간 모든 게 바뀐다’고 말하고 싶다. 재즈의 즉흥성은 다른 음악처럼 정해진 줄거리로 진행되는 게 아니다. 작곡자나 연주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알 수 없는 음들의 파동 속에서 감상자들은 저마다의 상상을 펼친다. 이 즉흥의 순간 만들어지는 우연성에 긴장감이 있다. 그것을 관측하는 게 재즈 감상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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