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정책의 일환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본격 가동된다. ‘밸류업 공시’로도 불리는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 가이드라인과 해설서가 확정되고,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밸류업 통합 페이지’가 오픈하면서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취임 100일째인 지난 24일 여의도 서울사무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중국에서 자금을 회수하고 있는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 한국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며 최근 일본 도쿄와 미국 뉴욕에서 각각 개최한 ‘K-밸류업 글로벌 로드쇼’의 분위기를 전했다.
정 이사장은 “일본 증시의 주가가 올해 1분기 약 20% 정도 상승한 데는 외국인 자금 유입이 상당 정도 역할을 한 걸로 알고 있다”며 K-밸류업 글로벌 로드쇼를 홍콩과 싱가포르 등에서도 조기에 이어나갈 생각을 밝혔다. 이어 “거래소의 해외 사무소 기능을 재정립해 K-밸류업 마케팅의 글로벌 거점으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상장사들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가 본격화될 예정인 만큼 국내 증시 세일즈를 가속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간담회에서 정 이사장은 확정된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 가이드라인과 해설서를 공개했다.
기업가치 제고계획은 상장사가 자율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수립하는 발전전략이다. 이를 공시해 투자자들에게 알리고 소통해나가면 시장에서 기업가치가 재평가될 수 있다는 발상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전략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거래소는 지난 2일 개최한 밸류업 지원 2차 세미나를 통해 기업가치 제고계획 공시 가이드라은 초안을 공개하고 한달여 동안 시장참여자들의 의견을 수렴해왔다. 이를 반영해 기업의 현황 진단을 설명하는 부분에 연구·개발(R&D) 투자 관련 지표를, 계획수립을 설명하는 부분에 자율성을 강조하는 문구를 각각 추가했다. 특히 R&D 투자 관련 지표를 추가한 이유는 상장사의 주주환원 강화 뿐만 아니라, 성장사업에 대한 투자도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확정된 가이드라인에 따라 작성된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공시할 플랫폼인 ‘밸류업 통합 페이지’도 오픈됐다. 거래소의 상장공시시스템(KIND) 홈페이지에서 ‘기업 밸류업 정보’ 탭을 선택하면 △기업 밸류업 소개 △공지사항 △공시현황 △투자지표 △인덱스 △기업밸류업 우수법인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상장사들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이 공시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가이드라인 초안이 공개된지 한달여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이사장은 “일본의 사례를 보면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뒤 4개월 정도 지난 뒤 대상 기업들 중 13% 정도가 관련 계획을 발표했다”며 “기업가치 제고에 관심 있는 기업들이 예고공시부터 하면서 기업가치 제고계획의 내용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쳐 공시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장 밸류업 통합 페이지에서 활용할 수 있는 메뉴는 ‘투자지표’다.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자기자본수익률(ROE), 배당성향, 배당수익률을 23개 업종별, 종목별로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업종에 포함된 종목들의 투자지표를 비교하고 순위를 매기는 기능, 한 종목의 투자지표의 과거 5년 동안의 추이 및 평균을 확인할 수 있는 페이지 등은 투자 판단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정 이사장은 “밸류업 프로그램은 건전한 시장 압력(Market Pressure)을 통한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한다”며 “주주환원뿐만 아니라 기업 상황에 맞게 경영 계획을 수립하고 주주들과 진정성 있게 소통하는 게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가계의 자산구성 변화로 자산운용의 위험관리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개인투자자의 자본시장 참여 또한 증가하고 있어 자본시장의 신뢰 회복은 공정한 자산운용의 선결과제”라고 강조했다.
자본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과제는 ‘불법 공매도 감시 시스템 구축’과 ‘불공정거래에 대한 선제 대응’이다. 현재 거래소는 공매도 중앙 점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기업공개(IPO)와 상장폐지 제도 합리화도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한 주요 과제로 추진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우량 혁신기업은 쉽게 진입하고 좀비·부실기업은 적시에 퇴출되는, 진입과 퇴출의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겠다”며 상장사들에 대한 구조조정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현재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기업이 2600개 정도인데,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좀 많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의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의 상장 기업 숫자는 약 5500개”라고 말했다. 국내총생산(GPD) 기준으로 미국이 한국 대비 15배 큰 시장이지만, 상장기업 숫자는 2배 남짓이라는 지적이다.
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코넥스시장 사이의 역할 분담에 대한 고민과 함께 시장분류의 개편 가능성도 정 이사장은 시사했다. 그는 “우선 코스닥시장과 코넥스시장의 자연스러운 역할 분담 관계가 잘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코스닥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충분치 않아, 코스닥의 주요기업들이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상장하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의 경우에는 오키나와·도쿄·자스탁(JASDAQ) 시장을 재구조화해 프라임·스탠더드·그로스(성장) 시장으로 재편했다”며 “우리도 이런 사례들을 연구하고 정책당국과의 협의를 통해 개편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지 않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의 문제의식은 각 시장들 사이의 유기적인 역할 분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관련 과제를 추진하겠다”며 당장 시장 분류 개편이 추진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새로운 먹거리는 인덱스와 데이터가 될 예정이다. 정 이사장은 “다양한 지수 개발, K-밸류업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와 파생상품 등 혁신 금융상품의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며 “현재 개발 중인 밸류업 지수가 9월께 발표되면, 연말께 이를 바탕으로 한 투자 펀드들이 조성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거래소가 새로운 먹거리 확보에 나선 배경은 내년 초로 예정된 대체거래소(ATS) 출범이다. 국내 거래 중개 사업도 본격적인 경쟁 체제에 돌입한다. 정 이사장은 “복수시장체제에서도 투자자 보호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통합시장관리체계를 잘 구축하겠다”며 “모든 시장참여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제도와 관행, IT 인프라 등 고객서비스의 질 전반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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