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쌀 농가를 대상으로 내년부터 보험료를 내면 수입이 급감했을 때 소득을 보장해주는 수입 안정 보험(수입 보험)을 운영하기로 했다. 야당이 재정으로 남는 쌀을 사들이도록 강제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남은 21대 국회 임기 내에 처리하겠다고 선언하자 정부가 대안을 꺼내 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26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현재 콩, 양파, 보리, 옥수수 등 9개인 수입 보험 대상 품목에 내년부터 쌀을 추가하는 방안을 다음달 발표할 예정이다. 농식품부는 먼저 일부 지역에서 쌀 수입 보험을 시범 운영한 뒤 점차 지역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정부 예산 사업이어서 국회 동의는 필요하지 않다.
2015년 도입한 수입 보험은 보험에 가입한 경작자의 수입이 과거 5년치 평균 밑으로 내려갔을 때 그 차액의 최대 80%를 보장해주는 상품이다. 보험료의 80~90%는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나머지 10~20%는 농민이 내는 구조다.
수입 보험은 농가 소득을 보장하면서 경작자의 농작물 과잉 재배를 일정 정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농작물 생산량을 늘리면 경작자의 보험료 부담도 따라 증가하기 때문이다. 농가가 쌀 생산량을 늘려도 자기 부담 없이 수입을 보장받도록 해 과잉 생산과 재정 낭비를 유발할 것으로 우려되는 양곡법 개정안과 대별된다. 정부가 쌀 수입 보험을 양곡법 개정안의 대안으로 꺼내 든 이유다.
정부는 당초 수입 안정 보험(수입 보험) 대상 품목에 쌀을 넣는 방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쌀 가격이 일정 기준 이상 변동할 경우 정부 판단에 따라 쌀을 매입 또는 방출해 가격을 안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전세사기특별법 등 쟁점 법안과 함께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천명하면서 입장을 바꾼 것으로 분석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양곡법 개정안에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더라도 ‘농심(農心)’을 안정시키고 후폭풍을 최소화할 대안으로 쌀 수입 보험을 꺼내들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쌀 수입 보험은 양곡법 개정안보다 재정 부담이 훨씬 덜하다. 지난 17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속 가능 농정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내년도 전체 쌀 재배 농가 중 70%가 수입 보험에 가입하고 보험료 50%를 정부가 지원한다고 가정할 때 재정 소요액은 1279억~1894억원일 것으로 추산했다.
반면 야당안대로 양곡법이 개정될 경우 ‘쌀 생산 쏠림’ 현상이 벌어져 한 해 1조2000억원 이상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 관계자는 “양곡법 개정안에 비해 들어가는 재정은 6분의1 수준에 불과하지만 농가소득 안정 효과는 비슷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입 보험 제도까지 운용하면서 쌀 농가의 소득을 보장하는 이상 국회서 논의 중인 양곡법 개정안은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재정이 넉넉하더라도 양곡법 개정안이 가져오는 피해는 너무나 막심하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가뜩이나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양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다른 작물을 생산하던 농가들마저도 쌀 생산으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작물을 골고루 재배해야 달성할 수 있는 식량안보도 크게 해칠 것이란 설명이다. 민주당이 양곡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뒤로 반대 성명을 발표한 농업인 단체만 47개에 달할 정도다.
다른 작물을 재배하던 농가까지 쌀 농사로 전환하면 다른 식재료 생산이 줄면서 가격이 폭등해 자영업자들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촌 고령화로 인해 기계화율이 98.6%에 달하는 벼농사로의 쏠림현상이 심각한 상황에서 양곡법 개정안까지 더해지면 한국 농업은 망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 시범사업으로 도입하는 쌀 수입 보험을 본사업으로 확장하기 위한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는 쌀 농가가 보험료를 내더라도 수입 보험에 가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가격 변동을 제외하고 생산량 변동만 커버해주는 쌀 농작물재해보험 가입 농가도 상당히 많아서다. 농업정책보험금융원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쌀 농가의 농작물재해보험 가입률은 60.8%에 달했다.
이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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