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군인의 억울한 죽음이 37년 만에 순직으로 인정된 지 2년 만에 국가가 유족들에게 손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46부(김형철 부장판사)는 39년 전 군 복무 중 사망한 A씨 유족 5명이 낸 소송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총 4억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최근 판결했다.
1985년 6월26일 A씨는 전남 장성군 한 육군부대 근처 저수지에서 익사했다. 당시 육군은 A씨가 폐결핵을 앓는 부친의 몸보신을 위해 물고기를 잡으러 입수했다가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유족은 입대 후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이등병이 혼자 저수지에 들어갔다는 설명이 납득되지 않았다.
결국 유족은 30여년이 지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 A씨 사망에 대한 재조사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2022년 5월 위원회가 발표한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A씨는 선임과 함께 쓰레기를 버리러 저수지에 갔다가 선임 지시로 낚시 그물을 치러 물에 들어갔던 것이다.
부대 막내였던 A씨는 사고 전날 야근 근무 후 퇴근하지 못한 채 선임이 시킨 일을 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군은 수사 기록을 허위로 작성해 A씨의 사망을 개인 일탈에 따른 변사로 처리했다.
국방부는 2022년 9월 위원회의 진상규명 결정을 토대로 A씨의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했다. 지난해 10월 유족은 "군 수사기관이 진실을 은폐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고, A씨에 대한 보훈 등록도 제때 신청하지 못해 보훈 급여를 받지 못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법원은 소송이 제기된 지 2년 만에 A씨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씨의 사망 원인에 관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변사로 처리된 것은 군 수사기관이 고의나 과실로 직무상 의무를 위반해 진실 규명을 위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런 위법행위로 A씨 유족의 명예 감정이나 법적 처우에 관한 이해관계가 침해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씨의 부모는 수십년간 아들의 순직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다가 사망했고, 남은 유족은 사망 후 37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며 "이들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으리라는 점은 명백하고 순직에 따른 절차도 밟지 못해 망인의 공헌에 대한 보상과 예우를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A씨가 사망 당시 순직 군경으로 인정됐다면 유족이 받았을 연금 등을 고려해 배상액을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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