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범죄 사실 외에도 피의자나 피고인의 패션도 주목 받는다. 최근 '음주운전 뺑소니' 혐의를 받는 트로트 가수 김호중이 경찰에 출석하면서 옷부터 신발, 안경까지 온몸에 수백만원대 명품을 걸쳤다는 게 대중의 입방아에 올랐다.
온라인 커뮤니티 곳곳에는 김호중의 검정색 재킷과 신발 등이 어느 브랜드 제품인지를 분석하는 글이 올라올 정도다. 재킷은 유명 명품 브랜드 ‘몽클레르’가 지난해 봄·여름(SS) 컬렉션으로 내놓은 제품으로 970달러(약 132만원), 신발은 루이비통의 177만원짜리 제품이고 안경도 미국 액세서리 브랜드 크롬하츠의 400만원대 제품이다. 그가 착용한 이 제품들은 이미 해외 직구 사이트에서 검색 인기 순위에 올랐다.
부정적 사건에 연루되거나 문제를 야기한 이들이 착용한 의상이나 액세서리 등을 좇는 현상인 ‘블레임 룩(Blame Look)’의 전형인 셈. 김호중의 일거수일투족에 이목이 쏠리면서 패션까지도 주목받는 것이다. 이번뿐 아니라 과거에도 이 같은 현상은 몇 차례 있었다. 왜 사람들은 범죄에 연루된 인물들을 비난하면서도 그들의 외모와 패션에 관심을 가질까.
신 씨는 알렉산더 맥퀸 티셔츠, 보테가베네타와 입생로랑 가방, 반클리프 앤 아펠의 주얼리 등 해외 명품으로 휘감고 나타나 이목을 끌었는데 아예 ‘신정아 가방’ 등의 수식어를 붙여 홍보하는 인터넷 쇼핑몰이 등장하기도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블레임 룩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 1999년이다. 탈옥 후 전국을 누비던 신창원은 이탈리아 브랜드 ‘미쏘니’ 무지개 패턴 티셔츠를 입어 눈길을 끌었다. 이후 짝퉁(가품)이란 게 밝혀졌지만 미쏘니는 물론 비슷한 옷을 사려는 사람들이 늘어나 판매가 급증했다고 한다.
이듬해엔 로비스트 린다 김의 선글라스가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그는 폭행 혐의로 법정에 소환될 당시 ‘에스까다’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로비스트 활동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진 린다 김의 선글라스는 일종의 부를 과시하는 도구처럼 여겨지면서 이목을 끌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국정농단 사건 주요 인물들의 블레임 룩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는 2016년 검찰에 출석하던 중 몰리는 취재진에 신발 한 짝이 벗겨졌다. 이 신발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라다로 72만원짜리 제품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도 많은 블레임 룩을 만들어냈다. 2017년 덴마크 경찰에 체포될 당시 입고 있던 패딩이 눈길을 끌면서 ‘정유라 패딩’이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누리꾼들은 이를 캐나다 고급브랜드 노비스야테시의 제품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다만 노비스야테시 측은 브랜드 이미지를 고려한 듯 자사 제품이 아니라는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이를테면 음주운전 후 운전자를 바꿔치기한 범행에도 숱한 말 바꾸기와 반성 없는 태도를 보이는 김호중의 행태에 부정적 감정을 가지면서도, 한 달에 수천만~수억원에 이르는 돈을 벌어들인다는 김호중이 입는 옷은 어떤 브랜드인지에 대한 궁금증과 동경이 인다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소비자가 블레임 룩에 노출되었을 때 내면에 지니고 있는 사회적 지위 추구 성향이 높은 경우 해당 제품에 대한 관여도가 상승하게 되고 제품과 블레임 룩을 유발한 유명인을 분리하여 지각하는 양가감정을 갖게 된다”면서 “부와 권력의 수준이 높은 유명인들이 반사회적인 행동이나 범죄를 저지르는 동기가 이기적인 목적에 있다고 지각하는 점이 되레 제품의 품질에 대한 높은 신뢰도를 갖게 되는 원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블레임 룩의 상업적 손익을 딱 잘라 평가하긴 어렵지만, 대부분 고급 브랜드들은 블레임룩 현상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대대적 언론 노출을 통해 브랜드나 제품 인지도는 상승했을지언정 긍정적 이미지가 확대됐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들이 착용한 제품이 화제가 되는 게 일시적으로는 매출에 도움이 된다거나 마케팅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에 좋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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