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 탈탄소 나침반 ‘수소환원제철 기술’ 톺아보기

입력 2024-06-05 06:00   수정 2024-06-25 17:45

[한경ESG] -러닝
철강산업의 탈탄소 로드맵 ①




철강산업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가능케 한 ‘산업의 쌀’이자 한국 제조업의 상징과도 같은 산업이다. 그러나 최근 거대한 반도체와 AI·빅데이터 등의 파도가 몰아치면서 철강산업은 상대적으로 트렌드에 뒤처진 낡은 산업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최근 중국 등 주요국에서 생산된 강재의 품질이 높아지고 가격은 저렴해지면서 국내 철강산업이 점점 국제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철강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파리기후변화협약 비준 등으로 촉발된 2050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국가 전체 탄소배출량의 15%, 산업 부문 탄소배출량의 40%를 차지하는 철강산업은 기후 문제 해결의 최대 장애물이자 ‘기후 악당’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한국 주요 제조업과 국내 고용을 지켜주는 방파제

자동차, 조선, 건설 등의 필수 소재를 생산하는 철강산업은 한국의 많은 제조 수출품의 가격 및 품질 경쟁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 공급망이 일제히 정지된 코로나19 발병 당시 강재 조달 문제로 물가 폭등 및 원가 관리 위기 등을 경험한 타국의 철강 수요 산업과 달리 한국 기업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강재를 조달해 산업경쟁력을 회복 및 유지할 수 있었다.

이처럼 탄탄한 철강산업은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 및 수출 역량 강화, 그리고 고용 확대 등 각종 파급효과를 불러온다는 점에서 대체 불가한 것이 사실이다. 최근 잇따른 공급망 위험으로 국가안보 측면에서 철강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한국 수출과 고용의 방파제 역할 또한 국가적으로 재인식되어야 한다.

철강산업의 탄소배출량이 높은 이유는 다량의 석탄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반응성이 높은 철은 자연 상태에서 그대로 있지 못하고 산소와 반응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철광석은 녹슨 상태(산화철)로 존재하며, 인류는 이것을 단단하면서도 성형이 잘되는 강철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고로는 산업혁명 때부터 시작된 강철 대량생산의 정점에 다다른 기술로, 석탄을 가공해 만든 코크스를 커다란 용광로(高爐, 고로) 안에 쌓은 뒤 연소시켜 산화철에서 산소를 제거하는 동시에 가공하기 쉬운 액체 형태의 철을 얻게 한다. 이것을 전로로 옮겨 성분 조정 등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철강 제품이다.

하지만 고로는 석탄을 연소시킬 때 발생하는 일산화탄소로 철광석 내 산소를 제거하기에 그 부산물로 이산화탄소를 만든다. 고로에서 산화철을 1톤 가공하는 데만 1.6톤 상당의 탄소가 발생하며, 철강 공정 전체적으로는 강재 1톤을 얻기 위해 약 2.3톤의 탄소가 발생한다.

열과 환원이 동시에 발생하는 고로를 중심으로 하는 고로 일관제철소는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가장 저렴하면서도 품질 좋은 철을 만드는 방법이기에,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다른 방법을 사용하려면 필히 ‘고로 일관제철소 수준의 원가와 품질’이라는 장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탄소중립 시대에는 원가 및 품질 경쟁력을 포함한 탄소배출량까지 줄여야 하는 도전이 기다린다.

이에 포스코가 2020년 아시아 철강사 최초로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기념비적 선언을 했음에도 많은 사람이 과연 200여 년간 이어온 탄소 기반 제철 공정을 바꿀 수 있을지, 또 그 결과물이 현재 구입하는 강재에 비견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전 세계에서 독보적 ‘하이렉스 기술’ 재평가 시급

과연 포스코는 역사적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으로 끝내지 않고 이런 도전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대한 해답은 포스코가 독자 개발 중인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기술 ‘하이렉스 (HyREX)’의 개발 및 상용화가 얼마나 빨리 되는지에 달려 있다. 하이렉스 기술은 전 세계에서 단 2개만 존재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 중 하나다.

하이렉스 기술은 이산화탄소를 생성하는 탄소와 달리 수소를 산화철과 반응시키면 수소가 산소를 가져가면서 CO2가 아닌 H2O(물)가 생성된다. 이 때문에 만약 수소로 환원할 수 있게 되면 철강은 탄소 고배출 소재에서 친환경 소재로 바뀔 정도로 탄소배출량이 극적으로 줄어든다. 하이렉스는 이 원리를 이용해 그린 수소와 재생에너지로 산화철을 환원하고 녹여 녹색 철강을 만들어내는 ‘꿈의 제철법’으로 불린다.

현재 이러한 꿈의 제철법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다고 평가받는 기술은 2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SSAB 등 EU 기반 철강사들이 주목하는 샤프트 환원로 기술이고, 또 하나는 포스코의 하이렉스다.

샤프트 환원로 기술은 고품질 철광석을 조약돌 모양으로 가공한 펠릿(pellet)이라는 원료에 수소를 쏘는 기술로, 천연가스를 사용하던 기존 공정을 수소 기반으로 개조하면 가능하기에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기술로 간주된다.

하지만 펠릿을 만들 수 있는 고품질 철광석은 가격이 높은 데다 글로벌 생산량 또한 제한적이라 충분한 물량 확보 및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반해 하이렉스는 믹서기처럼 토네이도를 일으켜 내부 물체가 섞이면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설비인 유동환원로라는 독자적 기술을 이용한다. 이는 비교적 모방이 쉬운 샤프트 환원로 기반 기술과 달리 FINEX 특허를 가진 포스코만이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이다.

포스코가 많은 철강사가 사용하는 샤프트 환원로보다 하이렉스 개발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값싸고 매장량이 풍부한 가루 형태의 저급 철광석을 별도 가공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만큼 비싼 생산비를 감당하더라도 생산량 자체가 제한적인 샤프트 환원로와 달리 그린 스틸을 대량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하이렉스 기술에 대해 “상용화되기만 하면 호주산 분광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기반 철강산업의 지형을 통째로 바꿀 것이다”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많은 회사에서 공정을 확립해온 샤프트 환원로와 달리 포스코는 FINEX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실제로 4년도 안 되는 기간에 1회 1kg를 시험하던 랩 스케일(lab scale) 단계에서 50kg을 시험하는 벤치 스케일(bench scale)로 발전했다.

2027년에는 30만 톤 파일럿 플랜트, 2030년에는 100만 톤 데모 플랜트, 2033년에는 250만 톤 상용화라는 로드맵을 달성하기 위해 수소환원제철 개발센터 개소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포스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하이렉스 기술을 개발하는 데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포스코와 정부의 온도차는 본질적으로 정부가 하이렉스를 철강산업의 탈탄소 기술로만 바라보면서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현재 뜨거운 산업에 비해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해서다.

그린 스틸 생산공정 개발은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와 조선 등 제조업 분야의 친환경 경쟁력을 더하면서, 전 세계에 고르게 분포한 분광을 이용하고자 하는 글로벌 철강사에 기술 수출을 가능케 하는 ‘게임 체인저 기술’이다.

급변하는 수출 시장과 대비책 세워야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미국·EU 간 ‘지속가능한 글로벌 철강 및 알루미늄 협정(GASSA)’ 등 탄소배출량이 새로운 무역규제 장벽으로 대두되는 가운데 관련 규제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철강산업은 수소환원제철 기술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독일과 스웨덴 등 철강사를 보유한 유럽 국가들은 탄소배출 저감 기술 개발을 위한 보조금을 강화하고 관련 설비 및 인프라 구축 마련을 위한 지원 제도를 마련해왔다.

미국은 높은 전기로 생산 비중과 풍부한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며 최근에는 60억 달러(약 8조55억원)에 이르는 역사상 가장 큰 산업 탈탄소화 지원금을 발표했다. 일본은 철강산업을 포함한 모든 산업의 저탄소 구조 전환을 위한 탄소중립 기술 개발 로드맵을 마련하고, 이를 위한 기금을 신설하며, 민관합작투자 유치 등을 통해 확보한 보조금으로 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의 경우, 정부는 저탄소 철강 기술 개발 예산액으로 약 2685억원을 편성하면서 현존 설비 개선과 신규 설비로 전환하는 데 각각 2416억원, 269억원을 편성했다. 포스코가 지난해 하이렉스 기술 개발에 필요하다며 정부에 요청한 금액인 8000억원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나는 액수다.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과 재생에너지 확보를 위한 인프라 마련은 단순히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넘어 철강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철강은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수요 산업의 주원료가 되기에 제조업의 스코프 3(총외부배출량)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업의 노력과 더불어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와 함께 정부는 하이렉스 기술 상용화를 달성한 후 필요한 그린 수소 및 재생에너지 조달에 대해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경쟁국에 계속 뒤처지면 철강산업은 물론 자동차와 조선 등 철강을 사용하는 산업의 경쟁력과 고용 유지에도 경고등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

전력 생산량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보다 2배 이상 많은 일본에서도 철강업의 상징인 일본제철 회장이 정부가 직접 재생에너지와 그린 수소를 충분히 조달하지 못하면 해외에서 철강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을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명주 기후솔루션 철강팀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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