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찾은 서울의 한 대형 종합병원은 의외로 한산했다. 지난 2월 20일 정부의 의대 증원 결정에 반발해 근무 중이던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수백여 명이 이탈한 뒤 입원 환자 수가 평상시의 60% 수준으로 줄었다. 병원 관계자는 “한 달에 쌓이는 적자만 200억원이 넘는다”며 “전공의 복귀를 한없이 기다리기보다는 병원부터 살길을 찾아야 할 판”이라고 털어놨다.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가 석 달 넘게 이어지면서 ‘전공의 없는 병원’으로의 전환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는 주요 수련병원에 건강보험 급여를 지원하는 ‘선지급’ 조건으로 전공의를 대체할 전문의와 진료지원(PA)간호사 채용 계획 등 병원 정상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상당수 병원은 이미 전공의 비중을 크게 줄인 의료 시스템을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선지급은 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매달 지급하는 건강보험 급여를 우선 주고 사후에 분할해 정산하는 제도다. 공단이 병원에 ‘무이자 대출’을 해주는 셈으로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지원이 이뤄진 바 있다.
정부는 선지급 조건으로 각 병원이 전공의 대량 이탈에도 필수진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자구책을 마련했는지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전공의 이탈로 인한 인력 공백 보완을 위해 전임의와 PA간호사를 얼마나, 어떻게 운영해왔는지, 필수증증진료 유지를 위한 전문의 신규 채용 계획은 있는지 등을 자료로 제출하도록 요청했다.
정부는 미복귀 전공의들을 설득하기 위한 대책 등도 병원에 요구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손실을 봤다고 병원을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전공의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고, 앞으로도 계획이 있는 병원을 중심으로 건보 재정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이와 별개로 28일까지 개별 상담을 통해 전공의들의 복귀 의사를 확인한 뒤 상담 결과를 29일까지 제출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최근 전국 수련병원장에게 발송했다. 전공의들의 병원 복귀를 유도하는 대책이지만 의료계는 전문의 중심 병원을 만들기 위한 명분 쌓기의 일환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난 23일 211개 수련병원을 기준으로 복귀한 전공의는 총 839명으로 전체(1만51명)의 8%에 불과하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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