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에서 '1호 재건축'을 위한 선도지구 경쟁이 본격화한 가운데 평촌신도시에서는 '재건축파'와 '리모델링파' 사이 갈등이 재차 불거지고 있다. 갈등 끝에 리모델링으로 가닥을 잡은 단지도 주민들이 법적 대응에 나서며 재건축 선회 움직임이 격화하고 있다.
28일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목련2단지'에는 리모델링 조합과 재건축사업추진위원회(가칭) 현수막이 각각 상대방 주장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어지럽게 걸렸다. 리모델링 조합이 내건 현수막에는 지금 리모델링을 중단하면 가구별로 5000만원 수준의 매몰 비용이 발생하고, 재건축까지는 15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추진위 측은 리모델링 조합 매몰 비용은 조합장과 임원에게 귀속된다며 리모델링 해산을 위한 임시총회를 소집한다는 현수막을 걸었다. 리모델링 조합 해산 동의서를 걷고 관련 소송까지 제기한 이들은 내달 1일 주민설명회를 열고 리모델링 조합 해산을 위한 법적 절차와 재건축 주민 동의율, 추진 방향 등을 공개할 예정이다.
추진위 관계자는 "현재까지 300여명이 재건축에 찬성해 임시총회 발의서에 서명했다"며 "설명회와 임시총회를 거치면 재건축에 찬성하는 주민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선회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주변 단지가 재건축을 하는 데 우리만 리모델링한다면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겠느냐"며 "지하철 4호선 범계역까지 100m 거리 초역세권 단지인 만큼 높은 용적률을 확보해 분담금도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목련2단지와 같은 블록에 있는 '목련5단지'는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재건축을 준비하고 있다. 길 건너 '목련6단지'와 '목련7단지'는 통합재건축에 나서며 선도지구 지정을 노리고 있다. 주변 단지들의 재건축 행보가 본격화하자 목련2단지 일부 주민들도 재건축에 합류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목련3단지', 목련5단지와 합친 2·3·5단지 통합 재건축을 요구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리모델링 조합은 안양시에서 리모델링 행위허가 신청을 승인하는 등 관련 인허가 절차를 대부분 마무리한 상태에서 사업을 원점으로 돌리면 주민들의 분담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반박했다. 리모델링이라면 연내 이주하고 공사에 들어가 입주까지 5년 이내에 끝낼 수 있지만, 재건축으로 선회하면 막대한 기간이 다시 소요되고 이는 주민 손해로 직결된다는 주장이다.
이형욱 목련2단지 리모델링조합장은 "선도지구 경쟁에서 뒤처진 만큼 재건축으로 돌아서면 최소 20년 이상 기다려야 할 것"이라며 "녹물·주차난 등 생활 불편과 20여년 후 불어날 공사비를 감안하면 빠르게 사업을 마칠 수 있는 리모델링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총회에서 리모델링이 승인된 이상, 일부 주민이 반대하더라도 사업을 빠르게 추진하겠다"며 "최악의 경우 리모델링에 반대하는 300가구에 대한 매도 청구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목련2단지는 193% 용적률의 994가구를 299.74% 용적률의 1023가구로 리모델링할 계획이다. 이르면 오는 9월 이주를 시작해 빠르게 공사를 시작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재건축을 원하는 주민들이 임시총회를 소집하고 법적 대응에 나서면서 재정비 시계 또한 안갯속에 빠졌다.
바로 옆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목련3단지도 재건축을 요구하는 주민들이 늘어나며 사업이 불투명해졌다. 지난달 권리변동계획 수립을 위한 정기총회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고 조합장을 비롯한 집행부 임기도 만료됐다. 시공사인 쌍용건설은 사업 지속이 어렵다는 판단에 무이자 대여금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 현재는 리모델링 조합과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가 천막을 설치하고 동의서를 걷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둘러싼 주민 갈등이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평촌은 용적률이 높아 일찌감치 리모델링을 추진한 단지가 많다"며 "노후도시 특별법이 시행되고 바로 옆 아파트에서는 재건축에 속도를 내는 상황이 펼쳐지니 리모델링을 선택한 단지마다 갈등이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통상적으로 리모델링보다 재건축 선호도가 높지만, 정비사업을 초기화하면 매몰 비용이 발생하고 순차적 재정비에 따른 장기간 사업 지연도 불가피하다"며 "단지별 상황에 따른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