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제를 개발 중인 바이오텍 종목들이 ‘대목’으로 꼽히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연례 학술대회 개막을 앞두고 동반 하락했다. 개막에 앞서 공개된 초록에 실린 데이터에 대한 실망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리가켐바이오(옛 레고켐바이오)는 6.2% 하락한 6만3500원에, 신라젠은 5.5% 빠진 4470원에 각각 거래를 마쳤다. 두 회사 모두 다음달 1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ASCO에서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임상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에이비온(-4.81%), 에이비엘바이오(-3.7%), 루닛(-3.69%), 지아이이노베이션(-3.12%), 티움바이오(-2.68%), 오스코텍(-1.6%) 등 이번 ASCO 참가 기업 대부분의 주가가 약세였다.
주로 외국인이 대거 물량을 쏟아냈다. 리가켐바이오는 하루 동안 57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신라젠(26억5400만원), 루닛(22억9200만원), 지아이이노베이션(15억3200만원), 오스코텍(11억9400만원)도 순매도 규모가 컸다.
특히 지아이이노베이션은 전날 호재성으로 해석될 수 있는 공시를 내놨는데도 하락 마감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면역항암제 후보물질 GI-102의 임상 1·2a상을 1·2상으로 변경하는 계획을 승인받았다는 소식이었다. 그럼에도 외국인과 기관이 동반 순매도했다. 기관은 8억5100만원어치를 팔았다. 주가는 장중 상승전환해 오름폭을 9.12%까지 키우기도 했다. 하지만 외국인과 기관에게는 물량을 처분할 기회일 뿐이었다.
주가가 1.14% 오른 유한양행도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26억3500만원어치와 18억4800만원어치를 동반 순매도했다.
시장 안팎에서는 지난 23일(현지시간) 공개된 초록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기대치를 높게 가져가는 건 무리"라며 "초록을 통해 공개된 데이터는 양호한 수준이지만, 세계적으로 언급될 만큼 ‘히트’를 친 데이터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고 평가했다. 초록에서 공개된 데이터가 투자자들을 잡아 둘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주식시장 전체를 보면 바이오섹터보다 투자매력이 돋보이는 테마가 많았다는 분석도 눈길을 끈다. 헬스케어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 A씨는 “27일엔 인공지능(AI) 테마에서 비롯된 반도체와 에너지 관련 종목들이 들썩거리면서 수급을 빨아들였다”며 “바이오섹터에서 이탈한 자금이 그쪽으로 움직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바이오섹터에서의 자금 이탈로 ASCO 모멘텀이 소멸 단계에 접어들었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제약·바이오 섹터를 담당하는 애널리스트 B씨는 “학회에서 발표될 중요한 데이터는 초록에서 대부분 확인할 수 있다”며 “낙폭이 컸던 종목들을 봐도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이 선호할 만한 리가켐바이오, 에이비엘바이오, 한올바이오파마 등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투자자들로부터 주목시킬 호재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HLB의 신약 승인 불발이나 큐라클의 기술반환 등의 악재로 바이오섹터에 대해 투자자들이 경계심을 갖게 됐다”며 “R&D 관련 대형 호재가 나오고 금리가 내려가 주면 다시 시장에서 주목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섹터가 마냥 부정적인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하반기에 투자심리를 개선시킬 만한 이벤트가 예정됐다. 우선 유한양행·오스코텍의 항암신약 레이저티닙과 얀센의 아미반타맙을 병용하는 요법의 미국 시판승인 여부를 앞두고 있다. 셀트리온은 미국에서 짐펜트라(피하주사 제형의 인플릭시맙)를 판매한 성과를 포함한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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