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 열풍에 음식료 관련주가 고공행진하고 있지만 유독 소외된 종목이 있다. 바로 오리온이다. 리가켐바이오(옛 레고켐바이오) 인수 이후 위축된 투자심리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오리온은 배당을 늘리는 등 주주환원을 강화했지만, 주가는 게걸음하고 있다. 증권가에선 중국 매출이 정상화하면 주가가 반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오리온은 올해 초에 비해 19.38% 하락했다. 4조5901억원이던 시가총액도 3조70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시총 순위는 삼양식품(3조9172억원)에 추월 당했다. 올해 외국인은 오리온 주식 3762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주가를 끌어내렸다. 이 기간 코스피 외국인 순매도 종목 7위다. 개인과 기관은 각각 2461억원, 1044억원을 순매수했다.
오리온과 달리 대형 식품주는 축포를 쏘고 있다. 삼양식품의 주가는 올해 들어 140.74% 급등했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으로 K푸드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CJ제일제당(14.46%), 오뚜기(14.25%), 농심(6.02%) 등 다른 음식료 종목의 주가도 올랐다. 코스피 음식료품 지수도 13.66% 오르는 등 훈훈한 분위기다.
리가켐바이오 인수가 오리온 주가 하락에 결정적이었다. 연초 오리온은 리가켐바이오 지분 25.7%를 약 5485억원에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이후 주가는 11만원대에서 9만원대로 내려앉았다. 이후 약 4개월간 오리온 주가는 3만원대를 횡보하고 있다. '제과업체' 오리온과 '바이오 업체' 리가켐바이오가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인식이 퍼지며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상황이 악화하자 오리온은 배당을 늘리며 주주를 달래고 있다. 지난달 오리온은 올해부터 3년간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의 20% 이상을 배당하겠다고 밝혔다. 배당 총액은 작년 500억원에서 올해 85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개인 투자자들은 종목 토론방에 모여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한 오리온 주주는 "삼양식품, 빙그레 주주 부럽네요. 우리는 바닥만 다지고 있네요"라며 부러움을 표현했다. 다른 주주는 "식품주 오를 땐 바이오주 취급받아 하락하고, 바이오주 오를 땐 식품주로 분류돼 하락한다"며 "주가 오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고 분노했다.
증권가에서도 오리온을 바라보는 눈높이를 낮추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재 증권사가 오리온에 제시한 평균 목표주가는 13만8917원이다. 6개월 전 17만2500원에 비해 19.5% 낮은 수치다. 실적 추정치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목표 주가수익비율(PER)이 낮아지며 목표가가 하향 조정됐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오리온은 리가켐바이오에 더 이상 자금을 투입하지 않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바이오산업의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추가 지원 가능성도 있다"며 "이종 산업 투자는 투자 매력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짚었다. 이어 "배당금을 늘리겠다곤 했지만, 그 외 주주환원책은 발표된 게 없는 점도 부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장지혜 DS투자증권 연구원도 "바이오 사업 투자로 위축된 투자심리가 더디게 회복되고 있으며 주요 법인의 성장률이 둔화한 점을 감안해 목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을 낮췄다"고 말했다. 이 증권사는 오리온 목표가를 15만원으로 제시했다.
다만 주가가 더 하락할 가능성은 작다는 의견도 있다. 이미 주가가 바닥에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올해 실적 추정치 기준 오리온의 PER은 8배 수준이다. 2018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주가순자산비율(PBR)도 1배 수준이다. PBR이 1배 미만이면 주가가 주당순자산가치보다 낮다는 뜻으로 저평가된 상태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 법인의 성장세가 회복되면 주가가 반등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작년 중국 법인의 매출액은 2022년에 비해 7.5% 줄었다. 1분기에도 명절 효과를 제외한 실제 성과는 부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4월 중국 법인 매출은 1033억원을 전년 대비 1.3%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하희지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경소상(중국 현지 유통상)을 교체하며 매출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며 "매출 공백 규모는 점차 줄어들 것이며 수수료율 하향 조정, 원재료비 감소 등의 영향으로 실적이 점차 개선될 전망"이라고 했다. 이어 "중국 유통 채널의 조정이 완료되고 매출이 정상화하면 주가가 반등이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꼬북칩'에 기대를 거는 전문가도 있었다. 장 연구원은 "미국 플레이밍 라임맛, 인도 비건맛, 호주 스테이크맛, 중국 마라새우맛을 출시하는 등 꼬북칩은 현지화에 성공했다"며 "글로벌 꼬북칩 매출액은 작년 800억원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에 수출하는 꼬북칩 매출이 400억원까지 성장하면 오리온은 현지 공장 설립을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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