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날 정장 입고 오지 말라던데요? 그래서 편하게 입고 왔어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 소재 한 카페에서 만난 한모 씨(30)는 베이지색 플리스와 티셔츠, 편한 바지를 착용하고 있었다. 30분 뒤 대기업 정보기술(IT) 직군 면접을 보러 간다는 게 잘 믿기지 않을 정도로 편한 복장이었다.
그는 서울 강서구 소재 IT 기업에서 3년차 임베디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한 씨는 "회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와 있는 출근 룩을 참고해 면접 때 입고 오라고 하더라. 사실 개발 직군 자체가 근무할 때도 복장이 자유로워 평소 일하는 것처럼 입고 왔다"며 웃어보였다.
소위 '판교룩', '개발자 룩'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편안한 복장이 IT 개발자 직군 면접장에 확산하는 분위기다. 과거 자율 복장이라 해도 최소 세미 정장에 준하는 셔츠에 슬랙스는 입어야 한다는 암묵적 룰이 있었지만 이젠 면접장에서도 편안한 복장이 대세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국내 IT 기업을 중심으로 퍼진 자율 복장제도가 기업 면접까지 퍼진 셈이다. 개발자들이 일하고 싶은 주요 IT기업으로 꼽히는 네이버 카카오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 토스 직방 야놀자 등 8개 업체에 확인한 결과 모두 면접 자율복장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주요 게임사인 넥슨코리아 엔씨소프트 넷마블 카카오게임즈 등도 비슷하다.
카카오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김모 씨(26)는 "2년 전 입사 당시에도 맨투맨 같은 편한 복장으로 면접에 온 사람들을 꽤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면접 의상이 합격·불합격을 가르는 것 같지 않고 일반적으로 코딩 같은 개발 능력을 최우선으로 보는 것 같다"면서 "근무할 때도 맨투맨이나 후드티를 많이 입고 요즘은 날이 더워져 반바지를 입은 동료들도 종종 보인다"고 전했다.
한 게임업계 종사자 최모 씨(34)는 "말만 자율복장인 게 아니라 실제 회사에 면접을 보러 올 때 티셔츠에 청바지 입고 오는 사람들을 본 적이 많다"고 했다. 이어 "업무 시에도 자율복장이다 보니 보통 개발자들이 사내에서 일할 때 맨발에 슬리퍼를 신거나 반바지도 입곤 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대기업 IT 부서 역시 유사한 분위기라는 전언이다. 한 대기업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김성재 씨(29)는 "입사 당시 비즈니스 캐주얼 느낌으로 세미 정장에 검은 티셔츠를 입었는데 면접장에서 '왜 이렇게 차려입고 왔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실제로 IT 서비스 기업들은 훨씬 더 자유로운 것으로 알고 있고 트레이닝복이나 청바지도 가능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IT 서비스 기업이 아닌 우리 회사 역시 그에 준할 정도로 분위기가 자율화됐다"고도 했다.
이처럼 '판교 출근 룩'은 판교 소재 IT 기업뿐 아니라 국내 기업 IT 직군에 정착하는 분위기. 개발 직군을 중심으로 국내 기업에도 자유로운 복장 문화가 확산한 것은 이직이 잦은 업계 분위기 영향이 큰 것으로 꼽힌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넥타이에서 세미 정장으로 바뀐 게 최근일 정도로 보수적인 기업인데도 판교에서 일하던 개발자들이 이직해와 회사 규정을 무시하고 자율복장을 입고 다니니 윗선에서도 포기했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IT기업은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경우가 많아 당시 자유롭게 입었던 복장들이 자연스럽게 회사 문화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며 "근무 자율복장제나 면접 자율복장제를 도입했다기보다 회사 복장에 제한이 없던 문화가 이어지는 모양새"라고 설명했다.
이어 "스타트업에서 일한 개발자들이 문화에 익숙해진 채로 다소 복장 규정이 있는 일반 기업의 개발 직군으로 이직하다 보니 IT 업계에선 전반적으로 자유로운 복장 문화가 퍼지는 것 같다"면서 "사실상 개발업무 특성상 코딩과 개발 능력이 가장 중요해 경력자 수시채용을 많이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복장이 더 프리한 것으로 비춰지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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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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