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층에 완전히 몰입해 살았던 1년이었어요. 촬영 직전까지는 공부하듯 배역을 분석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대사가 튀어나오더라고요. 스스로 배역에 몰입하는 정도가 한층 더 깊어진 것을 체감했어요."
밝은 모습 뒤에 꼼꼼함과 겸손함이 엿보이는 배우다. 올해 데뷔 11년 차가 된 이열음은 "8개 층을 가장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쇼에 임한 4층의 모습이 배우라는 직업에 임하는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고 느꼈다"면서 이열음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에이트 쇼'에 임한 소감을 전했다.
'더 에이트 쇼'는 8명의 인물이 8층으로 나뉜 비밀스러운 공간에 갇혀 '시간이 쌓이면 돈을 버는' 달콤하지만, 위험한 쇼에 참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글로벌 누적 조회수 3억 뷰를 기록한 배진수 작가의 네이버웹툰 '머니게임'과 '파이게임'을 각색해 한재림 감독의 감각적이고 세련된 연출과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지난 17일 공개된 후 넷플릭스 국내 TOP 10 시리즈 부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영화 '비상선언', '더 킹' 등에서 존재감을 보여준 이열음은 '더 에이트 쇼'에서 4층 김양 역을 맡았다. 이열음은 예측할 수 없이 흘러가는 쇼에서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때로는 능동적으로, 때로는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4층을 미워할 수 없는 매력으로 승화시켰다.
이열음은 자신이 맡은 4층을 '게임의 숨구멍'으로 해석했다. 그는 "4층은 '더 에이트 쇼'에 참가하기 전까지 '어렵게 혼자 지내는 아이'였을 것"이라며 "사회에서 이리저리 치여 다져진 생활력이 극 중에서 게임의 악조건에서도 끝까지 뭐라도 해보려는 끈기와 '무한 긍정'으로 표현되길 바랐다"고 전했다.
이어 "4층은 얇고 안정적으로 길게 사는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쇼에서도 머리를 굴리며 그때그때 권력을 잡는 세력에 붙는다"면서 "이중적이라 얄밉기도 하지만 시청자분들이 마냥 미워할 수 없게끔 밝고 귀엽게 풀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배역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면으로는 식사와 물을 가진 8층에게 굽신대는 모습을 꼽았다. 이열음은 "생존 본능이 강한 4층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평하며 "극에서 4층은 게임에 참가하기 전 8층이 될 수 있는 카드를 택했다가 내려놓는데, '8층이 될 뻔한' 미련 섞인 4층의 마음도 복합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실제 이열음은 4층과 같은 발랄함과 귀여움은 있지만, 보다 차분하고 진중해보이는 모습이었다. 4층으로 분하기 위해 그는 목소리도 두 톤 올리고, 늘 낙천적인 성격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실제 촬영장에서도 분위기 메이커였다. 이열음은 "매일 아침 배우 단톡방에 '오늘 하루도 파이팅!' 이런 인사를 남겼다"며 "다행히 선배님들도 이런 제 모습을 귀엽게 봐주셨다"고 전하며 웃음 지었다. 이어 "드라마 속 4층의 밝은 모습을 이어가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분위기를 띄우려고 한 건 긴장한 스스로를 위한 일종의 '자기 암시'이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 연기하면서도 자신만의 존재감을 보여줬던 이열음이었다. 8명이 촬영 내내 똘똘 뭉쳐있어 "식구같았다"는 후기가 나올 정도였는데, 이열음은 그 중에서도 5층 역의 문정희에게 고마운 마음을 내비쳤다.
이열음은 "문정희 선배님은 실제로도 극 중 5층처럼 개인적인 고민에 공감해주시고 연기에 대한 따뜻한 조언도 아낌없이 해주셨다"면서 "세트장이 대전이라 일주일에 1번 집에 갈까 말까 하는 일정이었는데, 선배님의 친절함에 큰 힘을 얻었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촬영 중 에너지를 발산하느라 지칠 땐 어머니인 배우 윤영주의 집밥이 힘이 됐다고 전했다. 이열음은 "집에 올라갈 때마다 엄마한테 먹고 싶은 음식을 말했다"며 "연기하며 수없이 먹은 차가운 도시락과 대비돼 집밥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면서 웃었다.
'더 에이트 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인간이 어떻게 극한의 상황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고문을 당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액션은 아닌데 액션 드라마 같다"는 감상평이 나오는 이유다. 쉽지 않은 촬영이 이어졌지만, 이열음이 가장 기대했던 장면은 3층 역의 류준열이 수면 고문으로 인해 환각을 보는 장면이었다. 이열음은 "원테이크(장면을 끊지 않고 한 번에 촬영하는 기법) 신이라 배우들끼리 호흡이 굉장히 중요했다"면서 "배우들 모두 안무 수준으로 정교하게 움직였는데, 나중에 드라마를 보면서도 멋있다고 생각한 장면이었다"고 전했다.
또한 끊임없이 1층부터 8층까지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하는 극의 특성상 "매일 PT 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털어놓아 웃음을 자아냈다. 운동량이 많다보니 체중 조절도 저절로 됐다고. 이열음은 "남자 배우들은 운동화, 여자 배우들은 부츠라는 설정이었는데, 실제로는 5층 규모의 세트였지만 그래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무 피곤한 날엔 머리도 못감고 촬영장에 간 적도 있는데 '실제 4층도 못 씻으니까'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사실적인거 같더라"라고 솔직하게 말해 폭소케 했다.
이열음은 '더 에이트 쇼'에서 간질 환자 설정 때문에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고, 넘어지고, 밀쳐지며 쉼 없이 활약하지만, 그 중에서도 압권은 이가 빠진 후 발음이 새는 연기라는 평이다. 이가 빠진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촬영 내내 CG를 위한 초록색 가치를 끼우고 연기했지만 "그래도 귀엽지 않냐"고 웃으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열음은 "실제로 이가 뽑힌 게 아니지만, 발음이 새야 했고, 동시에 대사의 전달력도 있어야 했다"며 "잇몸이 아파 혓바닥을 어디에 둘지 몰라 발음이 샌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했다"고 전했다.
3개월간 배운 탭댄스 장기자랑이 통편집된 사연도 귀띔했다. 그는 "처음엔 장기자랑으로 요들송과 탭댄스가 있어서, 탭댄스 장면을 위해 주 2회씩 3개월간 배웠다"며 "그런데 막상 해보니 제가 생각보다 잘해서(웃음) 그 장면이 웃기지 않아 편집됐다. 어쩔 수 없지만, 언젠가 또 써먹을 일이 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달랬다.
'더 에이트 쇼'에 대한 관심에 고마움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열음은 "시리즈가 공개된 후 얼마 안 된 시점에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한 분이 '4층님 맞으시죠?'라고 하셨다"며 "무의식적으로 실제로 사는 집의 층수를 말할 뻔했는데, '더 에이트 쇼'를 잘 봤다는 말을 해주셨다"면서 작품으로 겪은 새로운 경험을 전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다채로운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연기는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제 새로운 면을 보게 되는 과정 같아요. 그래서 연기가 좋아요. 요즘엔 도전해보지 않은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의 영역을 넓혀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고요."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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