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의 수단이 아닌 예술의 장르 … 한국-오스트리아 장신구 675점의 서울 나들이

입력 2024-05-28 17:55   수정 2024-05-28 17:56



목걸이와 팔찌, 반지 등 장신구와 주얼리는 오래 전부터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위한 수단이었다. 미술이나 예술의 영역보다는 꾸밈의 도구로만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장신구 안에는 작가들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각자의 개성으로 사회에 다양한 목소리를 전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부와 명예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장신구를 예술 그 자체로 조명하는 전시가 찾아왔다. 서울 종로구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열리는 한국-오스트리아 장신구 교류전 ‘장식 너머 발언’이 그것이다.



이번 교류전의 제목에도 전시가 보여주고자 하는 방향성이 담겼다. 과거 권력의 상징이자 탐미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전통 장신구의 한계를 넘어 재료와 형식 실험을 통해 새로운 ‘언어’가 된 현대장신구에 주목하겠다는 취지가 담겼다. 예술적 표현의 수단이자 소통의 매체로 자리 잡은 현대장신구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전시다.

이번 전시는 대한민국 서울시와 오스트리아가 손잡고 기획했다. 지난해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열린 주얼리 전시를 한국 장신구 예술과 함께 조명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1892년 양국이 수교를 맺은 이래 사상 처음으로 개최되는 대규모 장신구 교류전이기도 하다. 이 전시를 위해 모인 작가의 수만 111명, 작품 수는 675여 점에 이른다. 오스트리아에서는 57명의 작가가 작품을 들고 서울을 찾았다.



교류전은 크게 세 가지 섹션으로 나뉜다. 양국 장신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명한다. 주얼리라는 예술 장르를 처음 개척한 1세대 작가들에서 시작해 후세대 작가들의 작업, 그리고 미래 주얼리 예술의 발전 방향을 보여주는 작업을 순서대로 보여준다.

3층 전시장에 올라서면 주얼리의 선구자들이 관객을 맞이한다. ‘주얼리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이 붙은 첫 섹션에서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과 오스트리아 양국의 현대 장신구의 역사를 조명한다. 31명 작가의 143여 점의 장신구가 나왔다.

당시 오스트리아 1세대 현대 장신구 작가들은 페미니즘과 같은 사회적· 정치적 발언을 장신구에 직접적으로 담으며 활동했다. 단순 장신구로서만 머무는 것을 넘어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그 범위를 넓혀갔다. 조각이나 퍼포먼스 작가들과도 함께하며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한 것이다.

소재의 한계도 뛰어넘었다. 금속에 플라스틱을 처음으로 결합하며 오스트리아 작가들은 당시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종이와 직물 등 여러 소재를 차용했다.


한국은 이정규와 김정후 등을 비롯해 금속공예를 기반으로 국내에 예술장신구를 전파한 1세대 작가 7명을 소개한다. 이들은 유럽과 미국 등으로 유학을 다녀온 1세대 금속공예 장인들인데, 장신구에 적합하다고 여겨지기 힘든 철을 이용하거나 소뿔을 사용한 화각 작품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 장신구 세계를 펼친다.

바로 옆 2부 ‘현대장신구의 오늘’로 이어지는 섹션에서는 2000년대 이후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현대장신구 작품들을 선보인다. 2부는 신체, 자연, 서사 등 세 가지 소주제로 작품을 나눠 전시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오스트리아는 대학을 넘어 개별 장신구 스튜디오가 떠오르던 시기였다. 한국 또한 금속공예의 테두리를 벗어나 대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재료를 탐구하던 시기다. 같은 시기 두 국가가 보여준 장신구 양식의 변화를 탐구해볼 수 있다.


첫 번째 소주제인 신체를 다루는 두 국가의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한국 장신구는 신체와의 상호작용성에 주목했다. 착용하는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장신구가 유연히 움직이게끔 시도한 작품이 많은 이유다. 금속 팔찌에 실리콘을 주입해 몸에 맞게 하는 등 착용자와 작가 사이의 교감에 집중했다. 지난해 로에베공예재단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된 전은미의 작품도 나왔는데, 동물의 내장을 얇게 펴서 목걸이로 만든 작업이다.

오스트리아는 착용자 대신 인간과 사회 메시지에 주목했다. 페미니즘에서 시작해서 젠더에 관한 이슈를 주얼리로 표현했다. ‘미(美)’라는 기존의 관념과 개념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식이다. 떨어진 허벅지 사이를 금속 장신구로 메우거나 아랫배가 튀어나온 모습을 만들어주는 장신구를 만드는 등의 시도를 하며 사회에서 다루는 아름다움, 날씬함의 기준을 비꼰다.

다음 소주제인 자연에서는 양국 작가들이 자연을 두고 어떤 방식으로 해석했는가를 비교한다. 쌀을 연결해 붙여 장신구를 만든 공새롬의 작품과 산업용 소재 벨크로의 유연성과 자연의 유기성이 닮았다는 모티브로 작업을 펼치는 김용주의 작업이 소개된다. 오스트리아 베네딕트 피셔가 내놓은 하얀 장식 시리즈는 하얀 진주가 인간과 자연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세 번째 소주제로 다룬 서사성은 인간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가 된 장신구에 주목했다. 전통적 장신구는 권위나 이름다움을 상징하지만 현대에서는 그 자체로 작품과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주얼리를 착용하는 행위를 통해 감정이나 상태를 전달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의 서사를 전한다는 데 주목했다. 나무를 사용해 시간의 흐름과 인간의 삶을 표현한 주얼리, 행복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담은 장신구 등 인간의 감성을 전달하고 녹여내는 작품들이 관객을 만난다.

오스트리아는 이 섹션에서 보다 실험적 작업을 시도한 작가들을 조명한다. 이브닝 백, 화려한 지갑 등을 해체하고 장신구로 다시 만드는 페트라 침머만의 작업을 통해서는 소비지향적인 사회에 메시지 전한다.



마지막 3부 ‘현대장신구의 내일’에서는 전시를 정리하며 미래 장신구의 방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나왔다. 주로 지금까지 쓰이지 않았던 소재들을 차용한 작업이 소개된다. 한국은 한국 3D프린터로 목걸이 등을 만들거나 버려지는 레고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장신구로 탄생시킨 작품들이 나왔다. 오스트리아는 플라스틱과 돌을 결합해 사용하며 기하학적인 모양을 표현한 장신구를 펼쳐놓는다.

이번 전시는 오스트리아 대사 부부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이들은 2020년 여름 한국을 찾아 우연히 압구정의 한 갤러리를 방문했다. 마침 한국의 주얼리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이들은 그곳에서 한국 장신구의 예술성에 큰 감명을 받았다. 곧장 오스트리아와 한국의 주얼리 예술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를 서울에 제안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도 이번 교류전을 위해 재정적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개막일 전시장을 찾은 오스트리아 기획자들은 “이번 서울 전시를 통해 양국의 주얼리 예술이 대화하는 기회가 되었음 좋겠다”며 “대화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예술세계가 창출되기를 바란다”는 기대를 전하기도 했다. 전시는 7월 28일까지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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