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기업을 다룬 최신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아예 원색적으로 총수를 비난하는 댓글도 많다. 이런 댓글은 기사와는 무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무작정 기업과 총수를 ‘저격’하는 글인데도 추천을 많이 받아 기사 바로 밑에 버젓이 오른다. 그 화면이 고스란히 캡처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아다닌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마땅한 대책도 없다. 댓글을 달 수 없도록 만든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 기사와 달리 기업 기사엔 아무런 제한이 없다. 네이버 등 포털업체들은 악플 탓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연예인이 잇따르자 댓글을 달 수 없도록 했다. 정치인 기사의 경우 몇 번의 절차를 거쳐야 댓글을 볼 수 있도록 완충장치를 뒀다.
기업 기사는 예외다. ‘표현의 자유’란 이유로, 사람이 아니란 이유로, 기업은 악플러의 타깃이 된다. 법인(法人)이란 말처럼 법적으로는 사람 대우를 받는데도 그렇다.
문제는 이런 근거없는 댓글과 커뮤니티 글이 해외로 나돌며 우리 기업의 이미지를 갉아먹는다는 점이다. 악성 댓글은 인공지능(AI)으로 실시간 번역된 뒤 X(옛 트위터)와 미국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딧 등을 통해 ‘한국인도 인정하는 OO 기업의 더러운 실체’란 제목으로 세계로 퍼져나간다.
그나마 대기업은 이런 댓글을 감내할 수 있는 체력이 있지만, 스타트업은 생존의 문제로 직결된다. 반려견 사료 스타트업인 A사의 경우 한 소비자가 제품 유해 성분 이슈를 제기했고, 해당 글은 댓글을 통해 삽시간 퍼져 나갔다. A사는 논란이 되자 6개 인증기관으로부터 ‘유해성 불검출’ 판정을 받았지만, 결국 폐업했다.
물론 이런 댓글에 악의적 허위 사실이 포함돼 있으면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연예인처럼 명예훼손이나 비방죄로 고소하는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덕 기업’이란 낙인이 찍히는 후폭풍이 두려워서다.
이런 문제를 줄이기 위해 발의된 ‘인터넷 준실명제’를 골자로 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3년 넘게 국회에서 ‘낮잠’만 자고 있다. 29일 21대 국회가 끝나면 이 개정안은 자동 폐기된다.
전문가들은 규제법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거 없는 악플을 달지 않는 인터넷 문화를 조성하는 게 먼저라고 강조한다. 기업을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만은 아니다. 근거 없는 악플은 결국 ‘제살 깎기’로 귀결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악플→기업 이미지 추락→판매 급감→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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