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로 '원정 파산' 떠나는 지방 채무자

입력 2024-05-28 18:23   수정 2024-05-29 01:00

‘서울 2개월, 제주 12개월.’

지방 채무자가 파산을 신청하고 선고받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서울에 비해 최대 6배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지방 채무자들이 서울로 사실상 불법인 ‘원정 파산’에 나서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개인 회생·파산 신청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는 만큼 이런 기형적 구조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원행정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는 회생법원의 개인 파산 접수부터 선고까지 평균 2개월이 걸렸지만, 제주에서는 처리 기간이 11.8개월로 6배가량 더 길었다. 접수부터 면책 인용까지 걸린 기간도 서울은 6.5개월, 제주는 20.8개월로 큰 차이를 보였다.

개인 회생 사건도 서울과 지역 간 편차가 컸다. 지난해 서울에서는 개인 회생 접수부터 개시 결정까지 4.7개월이 걸린 데 비해 강릉지원에서는 10.1개월이 소요됐다. 개인 회생 개시부터 인가까지는 서울이 2.8개월, 울산이 5.6개월로 두 배가량 차이가 났다.

도산 사건이 급증하면서 법원별 속도 격차는 더 벌어지는 추세다. 빚더미에 앉은 자영업자와 암호화폐 투자자가 늘면서 지난해 개인 회생 접수 건수는 12만1017건으로 전년 대비 34.5% 급증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법조계에서는 지역별 편차가 지방 채무자들이 지방 법원을 기피하는 추세로 이어져 서울 ‘원정 파산·회생’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시라도 빨리 빚 독촉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울로 위장전입을 감행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회생법원에서는 사건 접수 한두 달 전에 서울로 이사 오거나 여러 채무자가 한 사무장의 주소지를 적어 낸 사례가 숱하게 적발됐다.

지방 법원마다 실무 준칙이 제각각인 것도 채무자가 서울로 향하는 이유다. 서울·부산·수원은 주식과 암호화폐 투자 손실금도 탕감 대상으로 인정하는 ‘실무 준칙’을 도입했지만, 많은 지방 법원에서는 아직 이런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암호화폐 투자 실패로 빚더미에 앉은 20대 채무자가 서울로 몰리고 있다.

황성민 서울회생법원 판사는 “특정 법원에 가면 재판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큰 문제”라며 “전국 도산법원의 통일적이고 효율적인 업무 처리를 위해 도산 전문 인력 증원과 함께 신청 절차 간소화 등 정보기술(IT)에 기반한 재판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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