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역전' 드라마를 쓰며 국회에 입성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포부가 크다. 그는 대권 도전보다 자신의 정치 문법의 문화화를 강조하고 나섰다. “회유와 압박에 굴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팬덤에 갇히지 않고 성역 없이 할 말은 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준석과 개혁신당은 기존 정당과 차별화된 길을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끔찍한 혼종”이라고 규정하고 “더불어민주당의 정치 문법도 낡았다”고 비판했다. “특히 자유에 있어서 개혁신당이 국민의힘보다 더 '보수 교과서'에 부합한다”고 자신했다. “외교안보에 있어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면 '블루 팀'(서방계) 편에 당연히 서야한다”면서도, “실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으로 오히려 자연 과학, 이공계 공급 부족이 향후 발생할 수 있다”면서 “전면 백지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최근 '여성판 n번방' 이슈로 젠더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상임위원회로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일 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다음은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과의 일문일답.
▶22대 국회에서 반드시 할 것과 반드시 하지 않을 것은 무엇인가?
"반드시 할 것은 22대 국회 회기 내 보궐선거가 많을 것이기 때문에 개혁신당이 이때 더 많은 의석수를 확보해 국회에서 유의미한 정치 세력으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반드시 하지 않을 것은 내 정치의 방식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 방식을 순치(馴致)하려는, 즉 소위 가스라이팅이라고 하는 회유와 압박이 국민의힘 시절부터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 방식을 잃어버리지 않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개혁신당이 지향하는 가치와 비전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대한민국 사회에는 누적·정체된 개혁할 것들이 상당히 많다. 더 정체되면 대한민국은 앞으로 성장 동력이 없을 것이다. 개혁신당은 이를 뚫어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
▶ 그러면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가, 진보 정당인가?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낡았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정석적인 보수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보수에 대해 얘기하기가 쉬울 텐데, 윤석열 정부는 '끔찍한 혼종'이다. 더 이상 보수 진영의 색채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보수와 진보 분류를 나누면 우스워진다.
진보의 경우도 이번에 채상병 특검법 처리를 앞두고 '장외 집회'에 참여하라는 압박이 많았다. 지금까지 민주당이 민주화 때부터 가져왔던 그들의 문제해결 방식이 효율적인 수단으로 보이지 않았다. 결국 큰 틀에서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지적하는 야당의 입장인 것은 같지만, 방식이 우리와 너무나도 다르다.
적어도 '자유'에 있어서는 개혁신당이 국민의힘보다 훨씬 보수에 가깝다고 본다. 어떤 보수의 사상가가, 어떤 보수의 철학서가 윤석열 정부처럼 기업을 규제하고, 언론에 대해 심할 정도의 검열을 가하라고 얘기하나. 교육 개혁을 한다면서 일타 강사 현우진씨를 국세청 조사 4국을 동원해 털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보수 정권에서 돈 버는 것을 죄악시하나."
▶ '반윤'(反尹)을 기치로 하는 정당이라는 평가가 있다. 윤 대통령과 공생할 가능성은 없나?
"쌍방 충돌이면 보험사가 낄 수도 있고 과실 비율을 따질 수도 있겠지만, 내가 윤 대통령에게 당한 건 '후방 추돌'에 '뺑소니'다. 윤 대통령이 자수하지 않는 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여러 차례 윤 대통령을 망상가 돈키호테에 비유했다. '이준석이 날 대선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이준석 저 자식 때문에 내가 크게 이길 거 작게 이겼다'는 망상이다. 좀 제정신이어야 대화하겠는데, 망상의 세계 속에서 대화가 될 리가 없지 않나."
▶국민의힘 당 대표로 누가 되면 개혁신당과 연대 혹은 협력 가능성이 커진다고 보나?
"기대되는 사람이 없다. 앞에 나와서는 '채상병 특검법 소신 투표하겠다' 해놓고는 실제 투표한 거 보면 포섭당한 것 같고, 예측이 안 되는 집단이 돼버렸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보면 해외 직구 얘기하더니 채상병 특검은 얘기 안 하지 않나. 한마디 보탤 때는 보태고 도망갈 때는 도망갔다. 법률가라더니 채상병 특검이 지금 전국 핵심 의제인데도 아무 말 없지 않나. 홍준표 대구시장처럼 차라리 욕먹더라도 특검 반대한다고 얘기하는 게 올바른 정치다. 투명성 없는 저런 정치는 이제 더 이상 하면 안 된다."
▶차기 대권 도전할 건가? 허은아 대표는 "이준석 대통령 만들겠다"고 말했고, 김종인 전 고문도 가능성에 대해 지속해서 언급하고 있다.
"먼저 제가 하는 정치 방식이 대한민국에 보편화됐으면 좋겠다. 성역 없는 주제를 다루고, 논쟁을 통해 많은 것을 해결하고 싶다. '정무적'이라고 표현하는 소위 말하는 형님·동생 하면서 술 마시고 푸는 정치도 필요하지만 이러면 맥락이 없어진다.
예전에 지니어스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나간 적이 있었다. 시청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이 나와야 하는데, 출연자들끼리 친목이 강해지니까 자기들끼리 술 먹다가 '다음에 쟤 죽이자' 이런 식이 돼버린 것이다. 그러니 결국 방송에 맥락이 없어졌다. 어떤 인물들끼리 연대를 했는데 도저히 카메라에 잡힌 내용만으로 왜 연대했는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지금 정치도 그렇다. 합리적으로 토론하고 각자 전문적인 의견도 내면서 정반합의 과정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런 맥락 없는 행동이 나오고 있다."
▶ 안 하겠다고는 안 한다.
"그런 문화를 한번 바꿔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게 가장 중요하고, 그런 문화가 만약 잘 태동해서 자리를 잡으면 더 큰 정치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고 본다."
▶ 의원으로서 할 일을 하면서 큰 그림을 그리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윤석열이라는 검찰총장도 정치에 진입해 대통령이 될 때까지 8개월밖에 안 걸렸는데, 그 말은 요즘 '정치 시계'는 굉장히 빠르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국민의힘만 보더라도 대통령 되겠다고 몇 년 전부터 간판 걸어놓고 있는 분들이 못 뜨고 있지 않나. 대권을 아무리 준비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 자체가 목적인 사람들은 성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 지지자 스펙트럼이 젊은 남성에 국한돼있다는 평가가 있다. 최근 정치권은 팬덤 정치로 어지러운 모습인데.
"'이준석 팬덤'이라는 것은 실제로 있다. 그 팬덤을 조직화해서 정치에 동원하려고 했다면 할 수도 있었겠지만, 합리적인 소통을 지속해나가기 위해 팬덤의 정책적 제안 외에는 거의 반응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는 팬덤을 운영하면서 오프라인에서도 팬덤을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정치에 있어서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가장 큰 팬덤은 DJ(김대중 대통령)의 팬덤이다. 전라도 전체가 그의 팬덤이었다. DJ를 지키기 위해 팬덤이 움직인 적은 있지만, DJ는 팬덤을 동원해 다른 사람을 린치하게 만들고 이런 적은 없었다.
어느 정치인의 팬덤이라도 지지하는 정치인이 잘 되게 하는 것까지만 활동해야 하는데, 요즘 다른 정치인을 테러하는 모습이 보인다."
▶현안으로 넘어가겠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는데, 고령화 등을 고려했을 때 이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간과할 수 없지 않나?
"의료의 상당 부분은 인공지능(AI), 진단 기술 등 도입으로 효율화될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의사 인원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의료 기술의 고도화를 추진하는 게 맞다. 윤석열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숫자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이유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느낌으로만 가고 있지 않나. 의대 증원은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
한해 입학 정원이 20만 명으로 줄어드는 시기가 곧 올 텐데, 그중 60%가 이과라고 가정하면 1등급 4%는 4800명이다. 의대 정원이 5000명이면 1등급은 다 의대에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과학기술은 누가 하겠나. 일례로 서울대 미적분 과목의 1학기와 2학기의 수업 개설 수 차이가 엄청나게 났다고 한다. 정부에서 킬러 문항을 없앤다고 하니, 의대에 간다고 2학기 때 휴학해버렸다는 것이다.
정부의 미성숙한 정책 발표 때문에 자연과학, 이공계 인재도 4~5년 뒤 공급 부족이 나타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손대는 것마다 어떻게 이렇게 파멸적인 결과들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윤 대통령이 2000명 증원을 설명하는 도식은 '낙수 의사론' 하나뿐이다. 의사를 늘리면 서울에서 버티기 어려운 의사들이나 인기과를 가지 못하는 의사들이 지방에 가서 일하고, 기피 과를 간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건 사실 논리도 아니거니와, 지방에 있는 사람이 들어도 기분 나쁜 얘기다. 예전에 로스쿨을 도입하면서 변호사를 확 늘렸을 때, '낙수 변호사론'이 있었다. 직역별 변호사가 많아지고 지방에서의 변호사 서비스가 늘어날 것이라더니 아니지 않나. 윤 대통령은 지금 굳이 희한한 가설들을 검증하고 나섰다는 게 문제다."
▶ 평소라면 언급했을 것 같은 최근 '여성판 n번방', 성인 페스티벌 사건 등 젠더 갈등 현안에 대해선 별도 입장이 없었다.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오히려 미국 대사관에서 민감하게 반응했지, 대한민국 언론에서는 과거 n번방 사건을 다룬 것의 10분의 1도 다뤄주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저는 겸임 상임위원회로 여성가족위원회에 너무 가고 싶다. 지금 여가위를 보면 민주당에서는 여성계 운동을 해왔던 의원들이거나, 국민의힘에서는 젠더 이슈에 대한 관점이 없는 의원들이 가는 것으로 돼버렸다."
▶ 채상병 사건 이후 최근에는 '얼차려' 후 훈련병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또 남녀 대립이 극심해지는 모습이다.
"채상병 사건은 소위 '똥별'이라고 할 수 있는 고위급 장교의 진급 욕심, 무리한 수색 등이 비판 지점이었다면 이번에는 현장 하급 장교가 감정 기복인지 규정에도 맞지 않는 얼차려를 지시한 상황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이 계속 발생하면 군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또 문제는 향후 몇 년 동안 훈련소나 일반 군부대에서 제대로 된 훈련을 못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훈련보다 사고를 발생하지 않는 것이 최우선시된다는 것이다. 군 복무와 관련해서 굉장히 짚어봐야 할 부분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 최근 강연에서 보수주의자로서 징병제 폐지를 언급했는데? 그간 공정을 외치는 입장에서도 그렇고, 한반도 정세, 트럼프 재집권 등을 여러 요소를 감안하면 남녀 모두 군대에 가서 자신과 가족, 국가를 지키는 방법을 익히는 게 낫지 않나.
"모병제는 대한민국에서 실현하기 어렵다. 적정 임금 문제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연봉 3000~4000만원을 주면 군대에 가겠다'고 말하는데, 정작 사람들 모아놓고 '4000만원 주면 군대 갈 사람 손 들어보라'고 하면 아무도 들지 않을 것이다. 모병에 응할 사람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합리적인 군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빨리 재정립해야 한다. 실제로 하자는 건 아니지만, 예를 들어 휴전선에 철책을 놓지 말고 콘크리트 벽을 쌓아서 경계 병력을 차라리 없애버리면 어떤가. 과거 월급 10만원 군인과 현재 월급 200만원 군인을 경계 병력으로 세워놓는 건 그 의미가 다르다. 우리가 군에 기대하는 건 도발에 대한 신속 대응과 반격이지, 철책을 지키는 게 아닐 수 있다. 합리적인 군의 규모를 재정립하면 병력의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 한국 외교를 '사대주의로 축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수는 미일 관계를 더 중시하고 진보는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한다. 이 의원과 개혁신당이 생각하는 외교 노선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미국·일본, 중국 사이 양자택일이 강요됐을 때 우리는 어디에 서야 할 것인지는 명확하다. 소위 블루 팀(서방계)이라는 편에 서야 하는 게 맞다. 우리의 산업 구조나 사회 제도가 미국이나 일본과는 어느 정도 호환될 수 있지만, 중국과는 호환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서방 또는 미국 중심의 질서와 함께하는 것이 당연히 옳다고 본다.
미국은 안보 이익에 한국이 동참해야 하거나, 경제적으로도 한국 회사가 미국에 투자해야 한다는 상호주의나 일방주의를 가져가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렇게 바뀐 외교에서 바뀐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난 그동안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한국전쟁에 파병해줘서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하고 돌아오면 안 된다고 지적했는데, 실제로 윤 대통령은 그 말만 하고 왔다.
미국 정치인은 사실 한국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다. 윤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전부 다 앉아서 연설을 들을 때가 우리로서는 굉장히 중요한 기회였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우리 기업이 미국으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부분 등을 풀어내는 기회로 활용했어야 하는데, 그냥 한국에 있는 종편 보는 아저씨들 보라고 연설하고 온 것 같다.
중국에는 일부러 도발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중국이 우리에게 이상한 도발을 많이 했다. 사드 배치는 누가 봐도 방어적 차원인데, 왜 중국이 난리를 쳤는지 모르겠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한국도 불쾌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중국에게 인지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뻔한 것을 가지고 중국이 태클을 걸고 들어오니 중국이 우리가 잘 되길 바라는게 아니라 잘못되길 바라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국민들께서 많이 하게 되고 있다고 본다."
신현보/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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