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22대 국회 '기업 밸류업 특위' 꾸려라

입력 2024-05-29 18:05   수정 2024-05-30 00:14

얼마 전 칠순을 맞은 집안 어른이 조카들을 모아놓고 몇 가지 당부를 했다. 첫째 노후 준비를 위해 월소득의 일정 부분을 적립식으로 주식에 투자할 것, 둘째 한국 시장이 아닌 미국 시장에서 할 것.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한국 증시는 국민의 자산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기 투자자가 빠져나간 주식 시장은 투기판으로 전락했다. 높은 자본 비용에 기업들은 혁신을 위한 투자도 하기 어렵다. 저성장과 노후 빈곤의 악순환이 불 보듯 뻔하다.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일만큼이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절실한 이유다.
저출생만큼 중요한 국가 아젠다
한국 기업 주가 저평가의 원인은 저출생만큼이나 구조적이지만, 해법은 훨씬 명료하다. “투자자가 가장 싫어하는 건 불확실성”이라는 명제만 기억하면 된다. 해외 투자자에게 한국 투자를 꺼리는 이유를 물으면 십중팔구 “예측 가능성이 떨어져서”라고 답한다. 뉴욕에 앉아서 온라인 기업설명회만 들어서는 한국 기업이 어떤 의사 결정을 내릴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되는 룰에 따라 주주 가치 극대화를 위한 결정을 내릴 것이란 신뢰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 기업인들이 유독 탐욕적이어서가 아니다. 비정상적인 세제와 규제 아래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해온 결과다. 한국의 대주주들은 주가가 오르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속·증여세를 각오해야 한다. 배당이라도 하려면 배당 수익의 50% 가까운 돈이 세금으로 나간다. 열심히 주가를 높이고 주주환원을 할 유인이 없다. 대주주와 소수주주 간 이해관계 불일치를 초래하는 근본 원인이다. 재벌에 비판적인 행동주의 진영마저 상속세 완화와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밸류업 정책의 핵심으로 꼽는 이유다.
복잡한 실타래 국회만 풀 수 있어
합병·물적분할 등의 의사결정에서 소수주주를 배려하지 않는 것도 한국 대주주들이 못돼서가 아니다. 지분율 희석 없이 미래 사업에 투자할 돈을 끌어들일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 물적분할 후 상장이었다. 논란을 남긴 채 운 좋게 상장을 마친 LG에너지솔루션은 그나마 다른 걱정 없이 배터리 투자에 집중하고 있지만, 같은 길을 밟으려다 막힌 다른 기업들은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빚에 걱정이 태산이다. 차등의결권이 있었다면 대주주는 과감하게 혁신에 투자하고 소수주주는 기업가치 상승의 수혜를 누렸을 터다.

쪼개기 상장 같은 결정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법이 ‘이사회의 주주에 대한 책임’을 명시하는 상법 개정안이다. 논란이 많지만 결국 기업인에 대한 견제를 한국에만 있는 기이한 규제와 검찰 수사가 아니라 시장이 하도록 하자는 게 본질이다. 제도만 뒷받침된다면 기업들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대신 ‘경영 판단의 원칙’을 도입하고 동일인 규제, 사익편취 규제 같은 갈라파고스 규제는 모조리 없애야 한다.

답은 나와 있지만 풀기 어려운 문제다. 국회가 사회적 대타협을 끌어내는 수밖에 없다. 22대 국회에 ‘기업 밸류업 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는 이유다. 상속세 완화부터 상법 개정까지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패키지로 처리해야 한다. 정치적인 고려 없이 ‘이해관계 일치를 통한 투자자의 예측 가능성 제고’만 제1 원칙으로 삼으면 된다. 특위가 어렵다면 적어도 초당적 연구모임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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