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을 찬양하는 연극 ‘활화산’이 반세기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국립극단이 1974년 초연한 작품으로 차범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공연이다. 차범석은 ‘사실주의 희곡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인물로 1955년 등단해 2006년 소천할 때까지 모두 64편의 희곡을 발표했다. 구습의 족쇄와 6·25 전쟁의 그림자로 파괴되는 가정과 사회를 주로 그렸다. 공연은 지난 24일부터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리고 있으며 오는 6월 17일까지 이어진다.
연극 줄거리는 무너져가는 양반집이 양돈업으로 재기하는 것으로, 새마을운동 정신을 고취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대략의 내용은 1973년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모범 사례로 꼽힌 김명순 씨를 모티브로 삼았다.
윤 연출은 단막극 구조인 원작을 1부와 2부로 나눴다. 1부는 허례허식을 포기하지 못하는 양반 가문이 쇠락해가는 모습을 그린 블랙코미디다. 배경은 1960년대 말 경북의 어느 시골 마을. 주인공 가족은 껍데기만 남은 종갓집이다. 무너져가는 기와집에 살며 끼니조차 이웃에게 빌려 겨우 해결하며 버티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제사는 꼬박꼬박 챙긴다.
“남자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남편 상석, 빚을 지더라도 시아버지 상은 무조건 삼년상으로 치러야 한다는 시어머니 등을 우스꽝스럽고 신랄하게 비꼰다.
인물 간 권력관계도 반전된다. 한복을 입고 고분고분 허리를 숙이던 며느리는 초록색 작업복을 입고 머리는 풀어 헤친 채 돼지 사료를 나른다. 반면 남편 상석은 포대기를 두르고 아내 정숙 대신 아기를 돌보며 고분고분 지시를 따른다.
정숙은 전쟁으로 부서진 다리를 복구하는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마을 사람을 모으는데 누구의 지원도 받지 말고 우리 힘으로 해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정숙의 연설에 감격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양팔을 들고 그의 말을 복창한다. 집단주의적 광기를 드러내는 마지막 장면은 마치 히틀러의 나치 독일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사람들이 집단 광기에 빠져드는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에 대한 질문이 꼬리를 물었으면 합니다.”(윤한솔 연출)
1960년대 가정과 사회상을 그림처럼 묘사해 정감 가는 작품이다. 50년 전 쓰인 희곡이지만 세대 간 갈등을 표현한 대사가 현대 관객의 귀에도 익숙하다. 격렬한 몸싸움과 사투리 연기도 실감 나게 살린 출연진의 연기 덕에 등장인물들도 친숙하고 현실적이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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