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총통' 취임 8일 만에 권한 축소한 '친중 성향' 야당

입력 2024-05-29 10:29   수정 2024-05-29 14:29



대만에서 친중 성향의 야당 주도로 총통의 권한을 축소하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친미·반중 성향의 라이칭더 총통이 취임한 지 8일 만이다. 이에 반대하는 수만 명의 시민들은 12일간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홍콩에서는 지난 3월 개정된 국가보안법으로 6명이 처음으로 체포되면서 대만과 홍콩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만 '여소야대' 정국서 총통 권한 축소 법안 통과
'여소야대'인 대만 입법원(국회)이 28일 총통의 권한을 축소하는 '의회개혁법'을 통과시켰다고 블룸버그통신 등이 보도했다.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 개선을 지지하는 제1야당인 국민당과 제2야당인 민중당이 이번 법안을 추진하면서 결과적으로 이번 법안은 중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도에 따르면 대만 입법원은 이날 제3독회(심의)에서 입법원의 권한을 확대하고 정부에 대한 견제 기능을 강화하는 내용의 의회개혁법을 의원 103명 중 58명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야당은 대만의 정치체제가 총통에게 너무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번 법안을 주도했다. 대만 입법원은 야당인 국민당과 민중당이 각각 52석과 8석으로 과반을 점하고 있다. 여당 민주진보당(민진당)은 51석에 불과하다.

이 법안은 총통이 의회에서 정기적으로 국정연설을 하고 의원의 질문에 답변하도록 하는 등 정부에 대한 의회의 감독권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입법부는 군대, 민간 기업 또는 개인에게 의회와 관련됐다고 간주한 기밀문서에 대해서도 접근을 요청할 수 있다. 공무원이나 민간인을 공청회에 소환하고, 이와 관련해 이들이 의원에 거짓말할 경우에는 최대 20만대만달러(약 847만원)에 이르는 벌금을 물거나 징역형을 선고할 수도 있다. 정부 관료가 의회를 모욕하는 것도 범죄로 분류된다. 국방비 편성을 포함한 의회의 예산통제권도 강화된다. 이는 대만 통일을 바라는 중국에 호재로 받아들여진다.
10년만에 대규모 시위최소 10만명


여당과 시민단체, 학계는 대만의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며 반발했다. 우레이런 대만중앙연구원 소속 연구원은 "이것은 의회 쿠데타"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이날 입법원 인근에는 최소 7만명의 시민이 "중국의 정치적 간섭을 거부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했다고 외교 전문매체 디플로맷이 보도했다.

이번 시위는 법안이 입법원에서 처음 논의됐던 지난 17일부터 시작됐다. 라이칭더 총통이 취임한 20일 이후에는 그 규모가 3만명으로 늘었고, 25일 시위에는 최소 10만명이 참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디플로맷은 이번 시위가 2014년 '해바라기 학생 운동' 이후 10년 만에 가장 큰 규모라고 보도했다. 당시 시위대는 중국과 대만이 졸속 처리한 양안 서비스무역협정에 반대하며 입법원을 약 한 달간 기습 점거했다.

법안 제정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 행정부에 해당하는 행정원이나 총통이 거부할 경우 법안은 법률로 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행정원은 법안을 거부하거나 총통에게 전달할 수 있다. 총통은 10일 이내에 법안을 공포하거나 법안을 의회에 돌려보내 15일간의 추가 논의를 건의할 수 있다.
홍콩서 국가보안법 첫 체포천안문 연례 집회 조직한 활동가


이날 홍콩에서는 현지 경찰이 국가보안법에 따라 "중국에 대한 증오를 선동"했다는 혐의로 6명을 체포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홍콩판 국가보안법이 적용된 사례는 지난 3월 시행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홍콩 경찰은 현재 복역 중인 인권변호사 초우항텅이 다른 5명의 도움으로 페이스북에서 홍콩과 중국에 대한 증오를 선동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이번 혐의로는 최대 징역 7년을 선고할 수 있다고 주요 외신은 전했다. 초우항텅은 매년 천안문 시위를 기념하는 촛불집회를 조직하는 단체인 '중국의 애국주의적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홍콩 연대(지련회)'에서 부회장을 맡았었다. 그는 이미 2021년 불법 집회 참여를 선동한 혐의로 15개월 형을 선고받아 구금 중이다.

크리스 탕 홍콩 보안국장은 이날 진행된 언론 브리핑에서 "6명은 '초우항텅 클럽'이라는 소셜 미디어 팬 페이지에서 다가오는 민감한 날짜를 이용해 선동적인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게시했다"고 말했다. 민감한 날짜가 1989년 6월 4일 베이징 천안문 사태를 의미하는지를 취재진이 묻자 "날짜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동적인 행동이 문제"라고 답했다.

사라 브룩스 국제앰네스티 중국 국장은 "6월 4일은 초우항텅이 국가 안보 혐의로 구금된 지 1000일이 되는 시기"이라며 "당국은 그녀에게 더 많은 혐의를 추가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콩에서는 '제23조'로 알려진 홍콩판 국가보안법은 지난 3월 홍콩 의회격인 입법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반역이나 내란 등의 범죄에 대해 최고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다.

김세민 기자 unija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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