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가 빠른 편이신가요? 그렇다면 ‘ESG’라는 단어 조합에서 이상한 점을 못 느끼셨나요? 우리가 알고 있는 ESG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거버넌스(지배구조, 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조합한 단어죠. 한데 기업에서 거버넌스는 조직을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애당초 거버넌스를 환경·사회와 나란히 놓기엔 단어 조합의 밸런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앨릭스 에드먼스 런던 비즈니스 스쿨 재무 담당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ESG’의 단어들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환경과 사회는 우리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 더 넓은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와 관련된 것”이라며 “거버넌스는 투자에 대한 보상 방법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물과 기름처럼 도통 섞이지 않는 단어 조합이라는 거죠.
거버넌스는 기업가치를 높이는 핵심 개념으로 통합니다. 기업의 경우 거버넌스를 통해 사회적책임을 실현하고 실질적 경영 변화를 이끌어내죠. 한데 기업의 전부와도 같은 거버넌스를 가끔 아무것도 아닌 듯 취급하곤 합니다.
최근 대한민국 정부는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밸류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6일에는 ‘밸류업 가이드라인’ 확정안을 공개했죠. 첫 스타트를 끊은 것은 금융사였습니다. 시행 첫날인 5월 27일 KB금융이 4분기 중 발표 계획 안내(예고) 공시를 발표하며 주가를 끌어올렸고, 28일에는 키움증권이 상장사 최초로 본격적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하며 밸류업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이에 금융당국에서는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 이후 기업 인센티브와 상법 개정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군불을 지폈지만, 기업의 거버넌스 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후 증시는 다시 잠잠해졌습니다. 오히려 코스피·코스닥 지수 하락세를 면치 못하며 정부의 의욕적인 밸류업 프로그램을 다소 허탈하게 만들었죠. 이에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밸류업 가이드라인과 관련해 “디테일이 많이 부족하고 깊이 고민한 흔적도 없어 보인다”며 ‘C학점’이라는 박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일본처럼 기업에 별도의 독립된 거버넌스 개선 보고서를 제출토록 하고, 경영진이 아닌 이사회가 밸류업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 정부에서 밸류업 정책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해 실효성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 등을 조언했습니다.
기업가치 제고는 반짝 이벤트가 돼서는 안 됩니다. 전부지만 아무것도 아닌 대우를 받던 거버넌스의 새출발은 지금부터입니다. 지속가능한 성장은 기업이라는 화분에 지배구조라는 뿌리가 제대로 내릴 때 비로소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글 한용섭 편집장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