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도 얼굴이 있을까. 누군가가 존재해야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건축물, 그 건축물의 맨얼굴을 50년간 사진으로 포착해온 사진가가 있다. 독일 출신 현대 사진의 거장, 칸디다 회퍼(80)다. 누구나 한 번쯤 가봤을 공공장소가 그가 담아내는 대상이다.
도서관과 교회, 콘서트홀과 미술관 등을 그만의 시선으로 담는다. 그래서 그를 ‘공간의 초상을 그리는 사진가’로도 부른다.
완벽한 비례와 구도로 사진 작업에 평생을 바친 회퍼가 4년 만에 개인전으로 서울을 찾았다. 지난 23일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 서울점 K2에서 개막한 ‘칸디다 회퍼: 르네상스’에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리노베이션한 건축물, 과거에 작업한 장소를 재방문해 촬영한 신작 등 14점이 걸렸다. 작품의 주제인 ‘르네상스’처럼 재생과 부활의 의미가 담긴 장소를 찾아갔다.
회퍼는 공간이 과대 평가되거나 왜곡되지 않도록 인공조명을 쓰지 않는다. 압도적인 스케일의 콘서트홀이나 대형 경기장을 찍을 땐 모형 사진을 작업실에 두고 한참을 연구한다. 카메라를 정확히 원하는 위치에 두고 후보정을 하지 않는 그의 작업을 보면 시간이 멈춘 우주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전시장 1층에선 프랑스 파리의 카르나발레박물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16~17세기 지어진 저택을 2016년부터 수리했고, 재개관을 1년 앞둔 2020년 회퍼가 방문했다. 수세기에 걸친 역사적 공간에 모던한 계단 등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는 장면을 담았다.
베를린의 유서 깊은 극장 코미셰오페라의 텅 빈 무대와 객석 연작은 2023년 리노베이션을 앞두고 촬영했다.
2층에 전시된 베를린의 랜드마크 신국립미술관은 2022년 재개관한 새로운 모습을 담았다. 모더니즘 건축 거장인 미스 반데어로에의 건축물은 ‘빛과 유리의 전당’으로 불리며 6년간 데이비드 치퍼필드에 의해 보수됐다.
전시의 마지막 장소는 스위스 장크트갈렌수도원 부속 도서관. 719년부터 1805년까지 유럽 주요 수도원이던 곳을 2001년 찾아가 작업한 바 있고, 2021년 다시 방문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 코로나19로 누구도 지나다닐 수 없는 이 역사적 공간에서 홀로 셔터를 누르던 노년의 회퍼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20년이 지나 다시 찾은 곳을 바라볼 때 나의 내면이 달라진 건 없었다. 변화는 결국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했다. 회퍼의 프레임에선 일상의 공간 속 모든 것이 공평한 가치를 지닌다. 바닥의 균열, 계단의 끝점, 벽지의 작은 무늬, 샹들리에의 작은 부속품까지 또렷하고 분명하다.
이 모든 것의 완결을 위해 사진가가 준비하는 시간은 건축가가 처음 공간을 설계할 때 가진 마음과도 닮았다. 전시는 7월 28일까지.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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