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이냐, 현물이냐…국책은행 출자 '갑론을박'

입력 2024-05-30 21:03   수정 2024-05-31 02:30

정부가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 현금과 현물 가운데 어떤 방식으로 출자할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은 각 은행의 증자 방식을 두고 논의 중이다. 주된 쟁점은 내년 예산에 반영해 현금을 넣을지, 아니면 정부가 보유한 공기업 주식을 출자할지다. 현금과 현물을 혼합하는 방식도 거론된다.

국책은행이 증자하는 이유는 반도체와 방산 등 주력 산업 지원 정책의 핵심인 저리 융자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대출 여력을 확보하려면 자본금을 늘려야 한다. 대표적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1분기 말 기준 산업은행이 13.86%, 수출입은행이 14.24%였다. 이는 국내 은행 평균(15.52%)에 못 미친다. BIS 자기자본비율은 자기자본을 대출 등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눈 값이다.

국책은행은 현금 위주의 증자를 바란다. 같은 금액으로도 대출 여력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어서다. 현금을 받으면 BIS 자본비율 가운데 분자인 자기자본만 늘어나 비율이 크게 올라간다. 현물은 분자와 분모(위험자산)가 함께 늘어나 건전성 개선 효과가 줄어든다.

산업은행은 현금의 경우 10배까지, 공기업 주식의 경우 대략 6배까지 대출해줄 수 있다. 정부가 지난 23일 내놓은 반도체 생태계 종합지원 방안 가운데 산업은행 저리 대출은 17조원이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현금은 1조7000억원이면 되지만 현물은 2조8000억원어치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출입은행은 현금은 8배, 현물은 5배가량 대출 역량을 갖출 수 있다. 정부는 올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LH(한국토지주택공사) 주식을 2조원어치씩 출자하기로 하고 6월 내 절차를 마칠 계획이다.

국책은행이 현물을 출자받아 다른 기업 주식 보유 지분을 늘리면 실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산업은행이 한국전력 주식을 보유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게 대표적 사례다. 산업은행은 한전 지분을 32.9% 갖고 있다. 지분법에 따라 한전 실적은 지분에 비례해 산업은행 실적으로 인식된다. 한전은 2022~2023년 30조원에 육박하는 순손실을 냈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2022년 1분기 말 14.86%에서 2023년 1분기 말 13.08%로 급락했다.

다만 정부 재정 여건 때문에 현금을 출자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지난해 예산 대비 59조원의 ‘세수 펑크’가 발생해 재정 적자가 87조원에 달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100% 현금 출자는 쉽지 않다”며 “현금과 현물을 적절한 비율로 넣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출자 속도 측면에서 현물 출자가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현금 출자는 예산안에 넣고 국회 심의·의결을 거쳐야 하므로 내년에나 집행이 가능하다. 반도체·방산 등 주력 산업을 지원하는 속도를 높이려면 당장 현물이라도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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