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든, 중국이든 사람들이 해외 직구를 즐겨 하게 된 주된 이유는 저렴한 가격에 있는 것 같다. 상품의 구색과 품질은 그 뒤에 따라온다. 물건을 싸게 사고 싶은 건 현대 소비자의 근원적 욕망이다. 돌이켜 보면, 이런 욕망을 충족해 준 유통 기업이 늘 ‘승자’가 됐다. 지금은 온라인 쇼핑에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마트도 한때 그랬다. 1993년 서울 창동에 첫 매장을 열었을 때 이마트는 홍보 전단에 “최대의 고객 만족은 가격 만족이란 소매업의 기본을 이제야 실천할 때가 됐다”고 썼다. 이마트 홈플러스 같은 곳을 지금은 ‘대형마트’라고 하지만 당시엔 ‘할인점(discount store)’으로 불렀다. ‘대형’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가격’이 중요했다는 얘기다. ‘매일 최저가(Everyday Low Price)’ 경쟁이었다. 소비자가 다른 마트에서 더 싼 가격을 찾으면 차액의 몇 배를 내주고, 담당 직원은 시말서를 쓰는 게 흔한 풍경이었다.
쿠팡이 나타나선 갑자기 배송이 화두가 되는 듯싶었다. ‘로켓배송’을 앞세운 쿠팡은 온라인 쇼핑의 고질병인 늦은 배송을 단번에 고쳤다. CJ대한통운 같은 택배회사를 통째로 세워서 단 하루 만에 물건을 가져다줬다. 쿠팡은 “바보야, 문제는 배송이야”라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 모두가 속았다. 롯데 신세계 GS 등 국내 유통 대기업이 앞다퉈 배송 강화에 나선 계기가 됐다. 하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처방이 잘못된 탓이었다.
쿠팡은 앞에선 빠른 배송을 외치고, 뒤에선 최저가를 구현하고 있었다. CJ제일제당 등 대기업과 전쟁을 하다시피 하면서 가격을 후려쳤다. 제조사로선 죽을 맛이었지만, 소비자들에겐 이득이었다. 롯데 신세계 등이 이 ‘성동격서’ 전략을 뒤늦게 눈치채고 빠른 배송에서 한 발 뺐지만, 쿠팡에 이미 가격 결정권까지 빼앗긴 판이었다.
그랬다. 승부의 관건은 매장 크기도, 배송도 아니었다. 중국 e커머스가 온갖 문제를 일으켜도 소비자들이 많이 쓰는 이유도 결국 가격에 있다. 이 도도한 물결은 거스르기 힘든 것이다. 그런데 과거 유통사들이 했던 실수를 정부가 또 저질렀다. 국가통합인증마크(KC)를 받지 않은 중국 직구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5월 16일 발표한 것이다. 국내 유통사들 반응을 취재했더니 ‘역시나’였다. “그런다고 사람들이 안 살 것 같으냐”고 했다. 가격 앞엔 장사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 발표는 사흘 만에 ‘없던 일’이 됐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반발이 확산된 영향이었다.
정부가 발암물질투성이 제품을 국내로 실어 나르는 중국 e커머스를 규제하고 싶었다면 처방이 잘못됐다. 국내 유통사들이 물건을 지금보다 더 싸게 팔 수 있는 방안을 내놨어야 했다. 소비자도, 기업도 원하는 것 말이다. 유통사들은 그 방안도 갖고 있다. 일반상품 대비 20~30% 저렴한 자체브랜드(PB) 제품을 육성하고,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을 완전히 풀어 온라인 쇼핑과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며, 네이버 등 플랫폼 기업의 가격 비교 기능을 활성화하는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관심이나 의지가 없어 보인다. PB 제품과 플랫폼 육성은 규제로, 마트 영업시간 제한은 유지로 가닥이 잡혔다. 이러고도 국내 유통사에 알리, 테무와 싸워서 이기라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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