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점을 감안할 때 스페이스X는 특이한 사례다. 일론 머스크 CEO는 저돌적이고 충동적인 인물로 ‘능숙한 협상가’와 거리가 있다. 스페이스X에서 이런 역할을 전담하는 것은 2인자인 그윈 샷웰 최고운영책임자(COO)다. 그는 초대형 우주선 스타십(사진)을 우주로 띄우는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스타십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스페이스X의 숨은 리더인 샷웰 COO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샷웰 COO가 시간을 번 사이 머스크 CEO가 기술 문제 해결에 집중했고, 지난 3월 14일 세 번째 시험비행에서 스타십은 48분간 비행하며 궤도 도달에 성공했다. 우주 비행 후 첫 재진입, 페이로드(적재함) 문 개폐, 성공적인 추진제 이송까지 여러 ‘최초’ 기록을 달성했다.
다만 우주 비행 후 대기권에 재진입하는 과정에서 공중 분해된 것으로 추정돼 숙제를 남겼다. 샷웰 COO는 비행에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업그레이드를 실행했다. 스페이스X는 네 번째 시험비행에서 궤도 도달 후 스타십과 슈퍼헤비의 귀환 및 재사용 능력 입증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네 번째 시험비행의 성공 기대가 높아지면서 샷웰 COO의 위기관리 능력이 다시 한번 주목받는 모습이다. 그녀가 있었기에 스페이스X가 여기까지 왔다는 인터뷰가 줄을 잇고 있다.
빌 넬슨 NASA 국장은 최근 미 공영 라디오 NPR과의 인터뷰에서 “샷웰이 있어 스페이스X는 머스크의 좌충우돌식 경영에 휘둘리지 않는다”며 “머스크가 직접 경영했다면 NASA는 스페이스X와 협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페이스X를 대표해 미 정부의 우주정책 고문으로 활동하는 것도 머스크 CEO가 아니라 샷웰 COO다.
머스크 CEO와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스페이스X로 이직한 동료를 보러 갔다가 그를 만났다. 머스크 CEO는 샷웰 COO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의 온화함, 천재성, 업무 능력 등을 단번에 파악했다. 인류가 화성에 갈 것이라고 공언한 머스크 CEO의 꿈을 관료와 학계는 귀담아듣지 않았지만 샷웰 COO는 이를 진지하게 경청했다. 머스크 CEO는 곧바로 그녀에게 스페이스X 부사장 자리를 제안했다. 샷웰 COO도 머스크 CEO의 포부가 실현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샷웰 COO는 2002년 스페이스X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샷웰 COO의 진가가 드러난 건 2000년대 후반이었다. 스페이스X가 연이은 발사 실패로 휘청이자 NASA와 우주 기업들을 직접 만나 발로 뛰며 발사 대행 수주를 따내 파산 위기를 모면했다. 머스크는 샷웰 COO에게 무한 신뢰를 드러내며 2008년 사장 겸 COO로 승진시키고 회사 운영 전권을 맡겼다.
NASA에서 머스크가 전기차, 바이오, 금융, 에너지 등 문어발식 경영을 하는 것을 문제 삼으며 우주 사업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자 샷웰 COO가 직접 진화해 ‘대관의 여왕’이란 수식어를 재차 증명했다. 머스크 CEO가 트위터를 인수했을 때도 넬슨 국장이 “우주 탐사가 지장을 받지 않겠는가”라며 의구심을 나타내자 샷웰 COO가 “결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해 NASA를 안심시켰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샷웰 COO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머스크 옆에서 현실적 균형을 맞춘다. 우주산업에 가장 중요한 대관을 비롯해 예산, 인력 공급, 기술 격차 유지, 정치적 외압 등 바람 잘 날 없는 스페이스X를 안정적으로 관리한다.
머스크 CEO와 달리 성품이 온화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강해 사내 구성원 충성도도 높다. 샷웰 COO는 포천이 선정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50명’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국도 우주항공청이 출범한 만큼 정부와 민간 기업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줄 샷웰 COO 같은 인재의 중요성이 부각될 전망이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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