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고록은 여러모로 특이하다. 본인이 스스로 회고한 것이 아니라, 대담자의 물음에 답하는 틀을 따랐다. 대담자가 역사학자나 기자가 아니고 본인이 중용한 외교관이라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이번 회고록이 ‘외교안보 편’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그 내용은 외교와 안보에 관한 문 정권의 공식적 견해로 보인다.
그런 관점에서 살필 때 이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중국과의 관계에 대한 실질적 침묵이다. 동맹국 미국과의 관계가 정상적이니, 점점 위협적 태도를 보이는 중국과의 외교가 회고록의 중심적 주제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회고록은 ‘3불(不)’과 ‘혼밥’만을 간략히 언급했다.
문 전 대통령의 치적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다. 특히 중국과의 외교에서 ‘3불’이라는 부정적 유산을 남겼다. 3불은 중국의 동의 없이는 한국은 사드(THAAD)를 추가로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에 들어가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 동맹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공식적 약속이었다.
이 일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은 “소위 3불 정책을 우리가 중국에 약속했다고 하는데요, 소위 3불이라는 것도 역대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간 것이었거든요.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국민들에게 공약했던 것이 지금도 지켜지고 있는 것이고요”라고 말했다. 일시적 지침을 내부적으로 세운 것과 장기적 정책을 꼭 지키겠다고 적대적 국가에 약속한 것이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로는 3불은 한·미 동맹을 크게 해치고 한·미·일 삼자 동맹의 출범을 어렵게 만든 심중한 실책이었다.
뜻있는 시민들의 속이 터지도록, 문 정권은 외교와 안보에서 중대한 실책들이 있었다. 원자력 산업을 훼손해서 핵무기 개발 능력을 약화시킨 일, 문 전 대통령이 직접 북한 지도자에게 기밀이 담긴 장치를 넘긴 사건, 비합리적 군사 합의로 북한의 기습 가능성을 높인 일, 우리 공무원이 북한군에 사살되도록 방치한 사건, 귀순한 북한 주민들을 강제로 송환한 사건 등. 특히 마지막 사건은 도덕적으로 사악하고 법적으로 인류에 대한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속한다. 그러나 이런 실책들은 회복할 길이 없다. 북한으로 넘어간 기밀을 회수할 수 없고,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공무원을 되살릴 수도 없다.
3불은 다르다. 중국은 그것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 우리 정부를 압박해왔다. 그리고 결정적 시기에 그것으로 우리를 협박할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담장을 뚫고 들어온 이 화의 뿌리를 이 기회에 잘라야 한다.
물론 그 일은 어렵다. 어느 정권이든 중국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3불을 철회할 힘이 없다. 그 일을 추진해서 어려운 상황이 나오면, 중국의 영향 아래에 있는 세력이 조직적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가까스로 한·일·중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현 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다음 정권도 그런 결단이 어려울 것이다. 그사이에 3불은 세월의 무게가 더해져서 무슨 철칙처럼 될 것이다.
따라서 가장 나은 방법은 결자해지(結者解之)다. 문 전 대통령 스스로 시민들에게 3불은 실책이었다 밝히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인정과 사과가 문 전 대통령 자신에게 이로우리라는 점이다.
은퇴한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의 치적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마음을 쓴다.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외교에 특히 마음을 쓸 터이다. 그런 뜻에서, 이번 회고록은 문 전 대통령이 역사의 법정에 제출한 진술서라 할 수 있다.
3불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준엄할 수밖에 없다. 세월이 지나면, 문 전 대통령의 치적은 공이든 허물이든 잊힐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더라도, 3불만은 잊히지 않고 역사에 남아서 그의 이름에 칙칙한 그늘을 드리울 것이다.
북한과의 교섭에서 나온 실책들은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심의 문제다. 이민족과의 교섭에서 나온 실책인 3불은 우리 민족에 대한 충성심의 문제다. 결이 다르다. 당연히, 역사적 평가도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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