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투기 세력 '원화 약세' 베팅…조급하게 대처하면 진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입력 2024-06-02 18:19   수정 2024-06-03 00:43

연초부터 밸류업 기대로 들어오던 외국인 자금이 지난 5월 29일 이후 불과 3일 만에 3조원 정도 이탈했다. 국내 증시의 버팀목인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감에 따라 코스피지수는 90포인트 가깝게 급락했다. 원·달러 환율은 25원 이상 급등했다. 관심은 외국인 자금 이탈과 원·달러 환율 상승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것인지 여부다.

외환위기 당시의 서든 스톱에 비견될 정도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갑작스럽게 매도세로 돌아선 데는 미국, 중국 그리고 한국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미국 요인을 보면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하 기대가 낮아짐에 따라 국채 수요가 감소하면서 10년 만기 금리가 연 4.5%를 넘어섰다. 외국인 자금과 달러 가치는 기준금리보다 국채 금리에 더 민감하다.


일본과 함께 양대 미국 국채 보유국인 중국은 연일 매도 중이다. 한때 1조3000억달러에 달한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는 7500억달러 수준으로 줄었다. 미국이 중국의 디플레이션 수출을 막기 위해 고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지난달부터는 더 빠른 속도로 줄이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중국의 국채 매각은 직접적으로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 보유분 매각으로 국채 금리가 올라가면 미국은 이자 부담이 급증해 국가부도 확률이 높아진다. 대선을 앞두고 최대 경제 이슈로 떠오르는 쌍둥이 적자를 줄이기 위해 달러 가치를 누그러뜨리는 조 바이든 정부의 노력도 반감된다.

중국 처지에서 미국 국채 매각은 미국의 고관세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카드다. 고관세는 가격 할증 정책이기 때문에 위안화 가치가 절하되면 취약점이 그대로 노출된다. 중국이 일대일로 계획이 부진한 상황에서 보유 국채 매각 대금으로 금을 매입해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을 줄여나가면 시진핑 국가주석의 위안화 국제화 야망을 계속 추진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외국인 자금 이탈의 한국 측 요인을 따지면 정부 밸류업 대책에 대한 외국인의 실망감이 가장 크다. 3개월 만에 급조된 최종안을 보면 강제 규정과 장려책이 없고 상속세 인하 등 상법 개정도 포함돼 있지 않다. 뒤늦게 정책당국이 법 개정 문제를 들고나왔지만 ‘여소야대’ 입법 구조에서 과연 처리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은 외국인이 대부분이다.

상징성이 큰 대기업이 흔들릴 조짐을 보이는 것도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는 요인이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와의 공급망 파트너십 협정에 차질을 빚은 데 이어 창사 이후 처음 ‘노조 파업’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재정 사정이 여의찮은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 1조2000억원 넘는 재산 분할금을 어떻게 처리해 나갈지도 관심사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국제 환투기 세력이 원화 약세에 베팅할 조짐을 보이는 점이다. 머큐리(mercury·펀더멘털) 면에서 미국 경제에 비해 뒤떨어지고 마스(mars·정책) 면에서 우리 정부가 ‘아오키 법칙’에 걸려 있어 외환당국의 환율 방어 능력이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오키 법칙이란 대통령과 집권당의 지지도가 50% 밑으로 떨어진 것을 말한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주의해야 할 것은 조급한 나머지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최근 엔저를 막으려던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실패 사례에서 보듯이 국제 환투기 세력 간 연대 움직임이 나타날 때는 특정국이 단독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금리를 올리는 방안도 그렇다. 한국처럼 포트폴리오 지위가 신흥국에 속한 국가의 외국인 자금 유출입은 금리 차보다 펀더멘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 소외계층 이자 부담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의 문제가 한계 수준을 넘은 여건에서 금리를 올리면 우리 경제 펀더멘털이 더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만간 미국 재무부가 24년 만에 재개하는 바이백(buy back·만기 이전에 국채를 사들이는 것)을 추진하면 국채 금리가 안정될 수 있다. 중국의 보유 국채 매각에 따라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간접 효과도 줄어든다. 이미 합의해 놓은 한·미·일 외환 공조 채널을 가동하면 국제 환투기 세력에도 대응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 등으로 평가해 보면 외환위기가 재발할 확률이 낮게 나온다. 현시점에서 여야 정치인을 포함해 우리 국민 모두가 네 탓, 내 탓하기 전에 ‘프로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공공선)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외국인 자금 이탈과 원·달러 환율 상승 간의 악순환 고리를 차단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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